[노트북 단상] 울산대병원 이전 논란의 함의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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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혁 사회부 동부경남울산본부 차장

전국적인 의정 갈등의 불똥이 울산에서 때아닌 대학병원 이전 논란으로 옮겨붙었다. 김두겸 울산시장이 지난 4월 기자회견에서 울산 외곽인 동구에서 50여 년 자리한 울산대학병원을 핵심 시가지로 옮기자며 불씨를 댕겼다.

화들짝 놀란 민심은 두 동강 날 조짐이다. 동구민은 “지역 소멸을 부추기는 망상”이라며 발끈하고, 다른 구·군 주민은 “이참에 접근성 좋은 도심지로 옮겨 시민 이용 효율을 높이자”며 내심 반기는 눈치다.

당사자인 울산대병원이 어떻게 생각하든 한 번 타오른 논란은 꺼질 줄 모른다. 단순히 김 시장이 바짝 마른 민심에 불쏘시개를 던진 탓일까. 논란을 떠나 그 밑바닥을 걷어 보면 의료 불모지에 방치된 울산 시민들의 오랜 불만이 커다란 장작더미처럼 쌓여 있음을 느낀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공공의료원도, 국립대 병원도 없는 곳은 오직 울산뿐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22년 기준 1.62명으로 전국에서도 바닥권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울산 시민들은 기를 쓰고 수도권 병원으로 달려간다. 2022년 기준 서울 ‘빅5병원’으로 원정 진료를 떠난 울산 환자는 2만 명에 육박한다. 소아암 환아들의 원정 진료는 심각성을 더한다. 2022년 울산대병원 소아암 전문 교수 퇴임으로 병동 운영이 중단되면서다. 울산의 유일한 병원학교도 올해 1월 개교 17년 만에 문을 닫았다. 아프면 서럽다는데 명색이 산업수도 울산에서는 더하다.

응급의료체계도 허약하기 짝이 없다. 지난 3년(2021~2023년)간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총 549건에 달했다. 울산 시민이 뽑은 2023년 시정 베스트 1위는 ‘지역응급의료센터 추가 지정’이었다. 역으로 취약한 의료 인프라에 허덕이는 울산 현실이 여실히 반영된 것 같아 씁쓸함을 자아낸다.

지역사회가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시는 22만여 명 시민 서명을 받아 울산 첫 종합 공공시설인 울산의료원을 건립하려 했지만, 번번이 정부 예비타당성조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선 공약이면 무슨 소용인가. 매번 ‘그놈의 경제성’이 발목을 잡았다. 사회적 약자와 재난 의료 상황에 대처한다는 명분에도 정부는 마이동풍이다. 시는 향후 정부에 울산의료원 예타 면제를 요청한다고 하나, 성사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최초 산업기지로 60년 넘게 혹사당한 울산에 공공병원 건립마저 돈벌이 잣대로 재단하는 건 가혹한 처사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언제까지 울산을 상대로 왕서방 노릇만 할 거냐는 실망 섞인 비판이 가득하다.

이런 상황에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대학병원을 옮기자니 시민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김 시장은 “의사 정원을 늘리는 지금이 울산대병원을 이전할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한다. 이 말이 울산의 낙후된 의료 환경을 발전시킬 ‘마지막 기회’란 말처럼 들려 안타깝다.

울산대병원 이전 논란은 정부 홀대로 곪을 대로 곪은 민심의 환부가 갈라지고 터지는 예상치 못한 후유증이다. 상급종합병원의 수도권 쏠림 현상, 필수의료서비스의 지역 간 불균형 등 국내 의료체계의 고질병이 울산에서도 합병증처럼 불거지는 것이다. 정부가 울산에 국한된 내홍쯤으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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