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 갉아먹는 우울증, 혼자 해결하려다 더 키운다
[우울증, 얼마나 아십니까]
증상과 질환명 바로 연결 43% 불과
우울감·체중 변화 등 2주 이상 지속
일상 생활 심각하게 저해할 때 '진단'
약물 최소 4~6주 복용·유지 요법과
스트레스 대처 능력 향상 치료 병행
"제때 치료하면 일상 회복할 수 있어"
‘직장인 A씨는 최근 몇 주간 줄곧 침울한 기분에 의욕이 저하된 상태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다. 거의 늘 피곤하고 지친 상태로 식욕마저 떨어져 체중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직장에서 주도적으로 잘 처리하던 일도 갈팡질팡하거나 실수를 연발해 상사는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A씨에게는 어떤 정신적 문제가 있을까.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 4월 15~69세 국민 3000명에게 물었더니 정답인 ‘주요 우울 장애’(우울증)를 선택한 사람은 43.0%뿐이었다. 51.8%는 ‘스트레스·소진(번아웃)’이라고 잘못 택했다. 지난 1년간 ‘수일간 지속되는 우울감’을 경험한 비율은 40.2%로 2년 전 조사(30.0%) 때보다 크게 늘었지만, 정작 우울증이라고 정확히 인지하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는 의미다.
■지속성과 일상 저해 정도가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8년 75만 3011명에서 2022년 100만 32명으로 32.8% 늘었다. 2021년 세계질병부담연구에서도 우울증은 장애나 건강 악화로 건강한 시기를 손실하는 질환 순위에서 요통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특히 우울증은 자살 시도나 자살에 대한 빈번하거나 반복되는 생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서 2022년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5.2명으로 수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
우울증의 원인은 뇌 안의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이상 등 생화학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울증이 있는 부모, 형제, 친척이 있거나 자존감이 낮거나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비관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우울증을 경험할 확률이 높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심각한 경제적 타격,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 같은 환경적 요인도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센텀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장준호 과장은 “단순한 우울감과 우울증은 다르지만 우울증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울증을 개인적인 나약함 때문으로 치부하거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병을 키우는 사례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에 따르면 아래 항목 중에서 5개 이상(①, ②번 중에 하나 이상 포함)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이러한 증상이 일상 생활을 심각하게 저해하면 우울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①하루 중 대부분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②하루 중 대부분과 일상 대부분의 일에서 흥미나 즐거움 저하 ③체중 감소 또는 증가(1개월 동안 5% 이상 체중 변화), 거의 매일 나타나는 식욕 감소나 증가 ④불면 또는 과다 수면 ⑤정신운동 초조나 지연 ⑥피로나 활력의 상실 ⑦무가치감 또는 부적절한 죄책감 ⑧사고력이나 집중력의 감소 또는 우유부단함 ⑨반복적인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이다.
■약물치료와 정신치료적 접근 함께
의사가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고 현재 상태가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지 확인한 후 진단한다. 심리 검사를 통해 다른 정신질환이 같이 있는지 살펴보거나 다른 질환에 의한 이차적인 우울증인지 감별하기 위해 혈액학적 검사나 뇌파·MRI 등 뇌영상학적 검사도 시행할 수 있다.
우울증에는 약물치료와 정신치료적 접근을 함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약물치료에 쓰는 항우울제는 주로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작용하며, 최소 4~6주 정도 복용해야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호전된 뒤 재발 방지를 위한 유지요법도 최소 6개월 권장된다.
장준호 과장은 “정신치료적 접근은 우울증을 유발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현재 증상을 조절하는 치료다. 이를 통해 우울증 치료뿐 아니라 전반적인 정신건강이 향상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달부터 정신의료기관 등에서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인정된 사람과 국가건강검진 정신건강검사에서 중간 정도 이상 우울이 확인된 사람에게 전문 대면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한 배경이다.
그 외 치료 방법으로는 전자기코일을 통해 국소적으로 자기장을 형성해 대뇌 특정 부위 뇌세포의 활성도를 조절하는 ‘경두개 자기자극술’, 뇌에 전류를 의도적으로 흘려서 수십 초가량 자극을 유발시키고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의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전기자극요법’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친구·가족과 취미나 즐거운 일 함께하기, 매일 30분 이상 숨이 약간 차는 정도로 걷기, 술과 커피·담배 줄이기,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식사, 건강한 수면 습관 등은 우울증을 예방하거나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준호 과장은 “우울증은 제때 치료하면 얼마든지 호전될 수 있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질환”이라며 “증상이 나타나면 방치하지 말고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