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총괄건축가 언제까지 비워둘 건가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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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지난해 6월 이후 1년 넘게 공백
적임자 못 찾았는지 안 찾았는지 궁금

건축계 일각에선 시장 의지 의심
부산시 조직 개편서 전담 ‘과’도 없어져

도시 전략 프로젝트 묶고 엮어 줄 사람
전문가적인 ‘혜안과 침술’ 역할 꼭 필요

일본 구마모토현에는 건축을 통해 도시를 바꾸어 나가는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프로젝트(KAP)다. 1988년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추진된 건축물은 공공화장실, 경찰서 등 수십 개에 이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어진 건물은 대부분 그 지역 명물이 되었다. KAP의 성공 뒤에는 커미셔너(commissioner) 제도가 있었다. 민간전문가인 커미셔너는 사업 전반에 대한 기획과 각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를 위해 건축가를 선정할 수 있는 권한도 갖는다. 특이한 점은 이 프로젝트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정책과 사업이 종종 중단되거나 소멸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다르다.

일본에 커미셔너가 있다면 우리는 총괄건축가 제도가 있다. 민간전문가인 총괄건축가가 공공 건축물과 도시계획 등 공간환경 전반을 총괄 기획하고 자문하는 역할을 하는 게 총괄건축가 제도다. 국내에서는 서울시가 2014년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해 현재 4대 총괄건축가가 위촉돼 이어오고 있다. 한데 부산에서는 총괄건축가가 보이질 않는다. 부산시는 2019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해 시행해 오고 있지만, 지난해 6월 김민수 2대 총괄건축가 임기 종료 후 이 자리는 1년 넘게 비어 있다. 이에 부산건축사회를 포함해 부산 지역 4개 건축 단체는 올해 초 부산시에 이른 시일 내 총괄건축가를 임명해 줄 것을 건의했다. 더불어 지역 사정에 밝은 인물이 새 총괄건축가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도 전달했다.

지난해에는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라는 지역 현안이, 올해는 4·10 총선이 있었다. 그동안 부산시 입장에선 나름대로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명분마저 사라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부산시는 여전히 총괄건축가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이렇다 보니 지역 건축계 일각에서는 부산시장이 총괄건축가를 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얘기도 들린다. 1년 넘게 총괄건축가가 공백 상태이기에 당연히 의심의 눈초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부산시장은 새 총괄건축가를 위촉할 의지가 있는가?

지난해 9월 부산시는 총괄디자이너를 임명하면서 “총괄디자이너는 총괄건축가와는 별개”라 했다. 그래 놓고선 총괄건축가를 여전히 임명하지 않고 있는 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근 이루어진 부산시 조직 개편에서 총괄건축가 등을 지원하는 전담 부서였던 총괄건축과가 없어진 것도 이런 의심을 증폭시킨다. 물론 부산시 관계자는 종전 총괄건축과에서 하던 일을 건축정책과에서 챙기고, 총괄건축가도 현재 그 적임자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이런 설명마저 있는 그대로 들리지 않는다. 1년여 동안 못 찾았는지 안 찾았는지 궁금해진다. 이제는 부산시가 이 의문에 제대로 답해야 한다.

총괄건축가는 오랫동안 비워둘 자리가 아니다. 도시의 공간환경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주요 전략 프로젝트를 발굴해 이를 묶고 엮어 줄 사람이 바로 총괄건축가다. 지역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공공건축의 사업 방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고, 지역 특성과 여건에 적합하게 진행되는지 살피는 것도 총괄건축가의 몫이다. 부산시가 정말 의지가 있다면, 하루빨리 총괄건축가를 임명해 파편적으로 움직이는 부산의 도시 재생 사업이나 도시 계획을 전체적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생태 도시, 보행 도시 등 부산만의 특색이 조화롭게 발현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도시환경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주창하는 ‘15분 도시’와 연계하기 위해서라도 총괄건축가 제도는 필요하고, 멈춤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총괄건축가 제도를 운영하면서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래서 앞서 시행된 총괄건축가 운영과 제도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문제점이 있다면 보완하고 장점은 강화해야 한다. 요컨대 부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담고 미래 비전을 그리기 위해서는 지역 현안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총괄건축가가 필요하다. 지역을 잘 아는 인물이면서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면 금상첨화다. 총괄건축가에 대한 자리매김도 중요하다. 단순히 공급자와 시행자 사이에서 조정·자문하는 소극적인 역할이 아니라, 최고의 도시환경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건축적 이상과 경험을 적용, 실행하는 적극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도시는 시장이나 총괄건축가 같은 몇몇이 만들어가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막혀 있는 곳을 뚫어 줄 전문가적인 ‘통찰과 혜안’, 그리고 ‘침술’ 역할은 꼭 필요하다. 부산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런 중요한 자리가 1년 넘게 비어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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