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웹 시장에서 더 중요한 '신뢰'
모바일국장
1년 된 챗GPT 영향, 스마트폰 이상
크리에이터 시장 폭발적 성장 추동
페이크 사진·영상, 증시 영향까지
비대면 소통일수록 신뢰 더 중요
미디어는 사실 확인에 더 힘쓰고
이용자는 맹신 대신 비교·분석을
올해 마지막 달, 남은 달력 한 장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2년 가까이 2030세계박람회 유치를 응원했던 부울경 시민들의 마음은 이미 넘겨진 달력만큼이나 무겁기만 합니다.
전문 인력과 값비싼 장비를 보유한 미디어 기업이 정보소스를 독점하며 수용자에게 뉴스를 일방적으로 공급하던 ‘매스미디어 시대’도 이미 저물고 있습니다. 온종일 우리 손에서 떠날 줄 모르는 스마트폰이 ‘1인 미디어 시대’를 열었고, 정보의 흐름은 쌍방향에서 시작해 매우 다양한 창작자와 수용자 관계로 얽히고설킵니다. 거의 모든 데이터가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중심으로 유통·축적됩니다.
지난해 11월 30일 세상에 처음 선보인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대화형 서비스, 챗GPT는 1년 만에 세상에 큰 충격을 몰고 왔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장에 이은 제3의 혁명이라는 평가까지 나옵니다. 영상을 만들고, 자막과 내레이션을 입히는 일 전반에 생성형 AI가 적용되면서 콘텐츠 제작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줄이고 품질은 높일 수 있게 됐습니다. 콘텐츠를 만들어 영상 플랫폼으로 유통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개인을 크리에이터라 부르는데, 그들이 만드는 세계 시장 규모(325조 원)가 지난해 이미 세계 극장가 매출(32.8조 원)의 10배에 이르렀을 정도입니다. 이 시장 규모는 매년 10%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물론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의 부작용도 있습니다.
올 5월 미국 국방부 건물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진과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져 언론까지 인용 보도하면서, 미국 증시가 출렁인 사례가 있습니다. 폭발 후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진과 펜타곤을 합성한 사진이었는데 오전 9시30분 개장하는 미국 증시의 S&P 500지수는 0.3%까지 떨어졌다가 버지니아주 소방당국이 ‘사실무근’을 확인해주고서야 회복했습니다. 수갑을 찬 채 경찰에 체포되는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 러시아에 항복 선언하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동영상처럼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잠시나마 속았던 시민들로서는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형국입니다.
비대면 거래와 화상·음성·문자를 통한 소통이 일상화된 시대입니다. 진위를 의심할 여지없는 대면 소통이 대부분이던 과거에 비해 신뢰 확보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뉴스를 다루는 미디어로서는 사실 확인을 엄밀하게 거쳐 정제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합니다. ‘받아쓰기·따옴표 저널리즘’의 편리함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콘텐츠 제작·유통에 스며들기 시작한 AI 기술을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활용할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내부 지침을 제정·시행해야 합니다. 아직은 국내 언론 가운데 AI 관련 지침을 제정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콘텐츠 이용자도 SNS나 특정 매체의 보도를 맹신하기보다는 다른 매체나 소식통의 발표·보도를 비교해가며 소화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급류에 휩쓸려 떠밀려가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붙잡고 팔다리를 힘껏 저어야 하듯, 정보 홍수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려는 시민에게는 비교·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2030세계박람회 유치 추진 과정을 보도한 국내 대다수 언론의 태도는 시민 신뢰를 얻기에 부족했다는 점을 뉘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표 결과를 놓고 보면, 추진 주체인 대통령실·정부·부산시 관계자의 엄밀한 분석 없는, 희망 가득한 발언을 그대로 중계하는 데 그쳤던 것 아닌지 돌아봅니다. 우리 언론이 중립적인 해외 언론이나 경쟁국 동향을 냉철하게 교차 점검했었다면 어땠을까요. 추진 주체 측을 각성시켜 최소한 ‘졌잘싸’는 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언론보도를 믿은 시민들에게 이런 참담한 낭패감을 안기진 않았을 것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의 발언이 큰 따옴표에 포장돼 여론 시장을 또 흩트릴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믿음 없이는 나라도 사회도 제대로 설 수 없다는 옛말처럼, 디지털 세상에서나 현실 세계에서나 신뢰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정치도 자기 진영만 바라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풍토에서는 혐오와 배제를 내세워 자기편만 결집시키는 진영정치가 득세할 우려가 큽니다.
약 4개월 뒤면 총선입니다. 신뢰도 최하위의 국회를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손해를 감수하며 포용과 화해를 앞세우고 갈등 조정에 나서는 정치, 국민과의 약속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정치는 결국 현명한 국민의 선택으로만 등장할 수 있습니다. 쉬운 욕지거리 대신, 보기 싫은 뉴스도 찾아 읽어가며 귀찮은 비교·분석을 기꺼이 해내는 여러분의 한 표로 말입니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