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와 동떨어진 투자… 허울뿐인 녹색채권 [33조 녹색채권 어디에]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 무늬만 녹색 논란

공시 내용 왜곡에 투자자 기만
기업 경영권 보장 수단 둔갑도
녹색 투자 현황·성과 연구 부족

국내 가이드라인 법적 강제력 없어
전문 기관 엄격한 검증 필요 지적

지난 9월 부산 광복로 일대에서 열린 ‘907부산기후정의행진’의 퍼포먼스 장면. 정의롭고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는 여론이 전세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난 9월 부산 광복로 일대에서 열린 ‘907부산기후정의행진’의 퍼포먼스 장면. 정의롭고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는 여론이 전세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부산일보DB

녹색채권을 둘러싼 잡음은 녹색이냐, 아니냐에 머물지 않는다. 돈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기도 한다. 복잡한 자금 흐름 끝에, 애초 공시에서 내세운 목적이나 명분과는 다른 엉뚱한 사용처가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LNG발전처럼 채권 사용처 자체가 논란이 되면 비교적 문제의 소지는 명확하다. 복잡한 자금 흐름 속에 숨어버리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기도 힘들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문제의 소지가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공시 내용이 부실을 넘어 사실 왜곡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왜곡 정도가 심해 투자자를 ‘기만’하기도 한다. 다만 그동안은 이를 찾아보려는 시도 자체가 드물었다.


■투자자도 모르는 투자처

○… 2021년 우주·항공 사업을 영위하는 A 사는 2600억 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해, 자회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그리고 자회사는 이 자금으로 외국의 무인항공기 업체 전환사채(996억 원)와 위성통신 업체 지분(1604억 원)을 취득했다. 수직이착류기를 이용한 도심항공교통(UAM) 투자가 목적이라고 공시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설명은 없다. 녹색산업에 대한 투자라기 보다, 자회사를 통해 다른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거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실질적인 채권의 목적으로 보인다.

○… 2021년 B 건설사는 바이오매스 발전소 건립을 위해 600억 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4개월 뒤 C 금융사도 동일한 바이오매스 발전소 건립을 위해 200억 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하지만 실제 자금 흐름을 보면, C 사의 채권은 B 건설사의 사모사채에 투자하고 있다. B 사를 통해 발전소 건립에 자금이 흘러갈 수도 있지만, C 사의 녹색채권 구매자는 건설사 사모사채 투자자가 된 셈이다. 또 B 건설사와 C 금융사의 공시 보고서에서 제시된 온실가스 검출량은 같은 발전소이지만 차이가 있다.

○… 한국서부발전은 2023년 600억과 2024년 상반기 1000억 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하면서, 태양광·풍력·연료전지·LNG 발전 등에 투입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해당 채권이 사용처가 재생에너지인지 화석연료인지 모호한 상황에서 채권을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앞서 2022년에는 서부발전은 두 차례 걸쳐 3200억 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하면서 자금의 사용 목적을 ‘신재생 발전설비 건설 등’으로 명시했고, 태양광발전·풍력발전·연료전지발전를 투자 내용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결국 이 채권은 LNG발전소 건립에 쓰였다. 지난 8월 시민단체는 투자설명서 허위 기재·사기적 부정거래로 서부발전을 신고했다.

○…D 에너지사는 2024년 상반기 1500억 원을 비롯해 에너지 사업을 영위하는 해외 법인의 증자를 위해 지속적으로 녹색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D 사 외에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기업과의 조인트벤처 설립 등을 위해 녹색채권을 발행하고 증자나 지분투자를 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증자 등을 통한 법인 투자는 녹색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되는 것과 달리 환경 개선 효과 등을 제시하기 어렵다. 반면 지배권 확보 등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효과는 명확하다.

한국법제연구원 ESG법제팀 최유경 연구위원은 “직접적으로 녹색 분야에 재원이 투자된 채권의 발행 현황과 성과 등에 관한 연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며 “향후 다각적인 검토와 비판적 분석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녹색채권 자금이 어떤 경로로 투자되고 적절하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검증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발췌=녹색채권 가이드라인 발췌=녹색채권 가이드라인

■형식적인 요건과 미덥잖은 검증

국내 녹색채권도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상장이 된다. 사전·사후 검증도 의무다. 그럼에도 공시가 부실하거나 공시와 실제 사용처 사이에 거리가 먼 채권이 나오고, 이들 모두 검증단계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2021년 환경부는 ‘한국형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이듬해 개정안도 나왔다. 가이드라인은 상장을 위한 최소한의 형식 요건이지만, 법적 강제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공시 내용이 오해를 부르거나 사실을 왜곡해도, 처벌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

대신 외부검토를 통해 녹색채권은 신뢰성을 높인다. 제3자로부터 사전·사후 검토를 받아야 한국거래소에 상장이 가능하다. 채권 관련 전반이 검토 대상이며, 자금 집행 완료 때까지 1년 단위로 사후 보고서도 내야 한다.공

그러나 실질적인 신뢰도는 높지 않다. 전수조사 결과, 지금까지 녹색채권의 외부검토는 국내 대표 신용평가사와 회계법인 등 6개 기관이 361개 중 353개를 맡아 진행한 것을 확인했다. 이들 기관은 기업 경영 상황 등을 검토하는 것이 주된 업무로, 녹색금융에 특화된 곳은 아니다. 채권 발행사가 녹색채권 외 다양한 업무에서 검증기관의 고객이라는 것도, 객관적인 검토를 어렵게 한다. 외부검토가 사실상 녹색채권의 적합성을 판단할 유일한 수단이지만, 엄격한 검증이 쉽지 않은 구조이다.

반면 유럽은 노르웨이 기후 연구센터 ‘CICERO’ 등 녹색금융이나 기후 전문 기관들이 프로젝트 적합성을 살펴, 전반적인 채권 신뢰도가 높다. 그럼에도 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EU는 벌금 부과, 채권 발행 중지 등 강제적인 법적 장치도 도입했다.

최유경 연구위원은 “신용평가사 외에 당장 외부검토를 수행할 기관 지정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초기의 결정이 고착되거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적절한 권위를 가진 검증자와 기준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고 개선책의 필요성을 밝혔다.

※본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33조 녹색채권 어디에 > 데이터 확인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8KlLYwOqEqwFaTZLnSKnv5b4f0TgRvvfhVT9xgDtD-w/edit?usp=sharing

※ 데이터 확인 '바로보기'는 부산일보 홈페이지에서 실행됩니다.(필요시 URL을 복사하여 붙여 넣으면 테이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