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럽, 닮은 제도 다른 결과 [33조 녹색채권 어디에]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녹색채권 가이드라인 강제성 없어
외부검토가 사실상 유일한 검증 수단
신용평가사 중심이라 신뢰도 낮아

지난해 9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된 ‘923기후정의행진’ 모습. 정의롭고 슬기롭게 기후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는 여론이 전세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난해 9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된 ‘923기후정의행진’ 모습. 정의롭고 슬기롭게 기후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는 여론이 전세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부산일보DB

기업의 환경 책임 경영을 요구가 커지면서 녹색채권은 민간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출현했다.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시작한 만큼, 당국의 관리 방식도 시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채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해, 시장 안에서 자발적으로 그린워싱이 걸러지도록 유도하는 게 기본 골격이다.

문제는 아직 국내 녹색채권을 둘러싼 시장과 인프라가 성숙하지 못해, 충분한 신뢰가 확보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신뢰성을 높이려는 노력조차 드물다는 거다.


■외형적 관리체계의 완성

초기 국내 녹색채권은 주먹구구식으로 공시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다 2021년 환경부가 ‘한국형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일명 K-택소노미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관리가 시작됐다.

2022년 12월엔 환경부와 금융위원회,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한국거래소가 한국형 녹색채권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내놓았다. 가이드라인은 녹색채권 발행과 사후 관리 등 관련 절차를 설명한다. 녹색분류체계는 어떤 프로젝트가 녹색금융에 포함되는지를 규정한다.

한국형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에 따라 한국거래소에 녹색채권을 상장하기 위해선, 해당 채권은 제3자로부터 사전·사후 검토를 받아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검토 대상은 해당 프로젝트의 녹색금융 해당 여부, 프로젝트 과정의 환경 위협 요소, 자금 집행의 적합성 등 채권 관련 전반적인 내용이다. 제3자 검토 기관은 환경 전문가를 고용한 뒤 거래소에 등록을 해야 한다.

녹색채권 관련 보고서와 공시자료는 한국거래소 사회책임투자채권 전용 온라인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사후 보고서의 경우 1년 단위로 발행액의 집행 정도를 보고해야 한다. 한국형 녹색채권 가이드라인 자체는 국재제본시장협회(ICMA), 국제기후채권기구(CBI) 등의 지침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한국과 EU 녹색의 차이

그럼에도 한국의 녹색채권은 선진국에 비해 신뢰성 확보가 쉽지 않다. 가이드라인이나 지침 등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보고서 내용의 부실과 왜곡 등에 대한 처벌이 따로 이뤄지지 않는다. 국내에선 당국 차원에서 개별 녹색채권의 적합성을 검토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제3자의 외부검토 내용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수조사 결과, 지금까지 녹색채권의 외부검토는 국내 대표 신용평가사와 회계법인 등 6개 기관이 361개 중 353개를 맡아 진행한 것을 확인했다. 신용평가사들이 녹색채권의 외부검토를 전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기관은 기업 경영 상황 등을 검토하는 주된 업무이다. 별도 환경전문가를 채용했다고는 하지만, 녹색금융에 특화된 기관으로 보기는 어렵다.

신용평가사들과 채권 발행사 사이의 관계도 구조적으로 엄격한 검증을 어렵게 한다. 발행사인 기업과 공공기관 등은 녹색채권 외 다양한 업무에서 신용평가사의 고객이다. 신용평가사 입장에서 관행적으로 ‘적합’ 판정을 내리는 것을 깨고 발행사와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녹색금융 시장 자체가 성숙하지 못한 국내에선 당장 신용평가사를 대체할 마땅한 기관도 없는 실정이다.

유럽의 경우 EU 녹색채권 기준에 따라 엄격한 외부검토가 이뤄진다. 주요 외부 검토 기관은 노르웨이 기후 연구 기관인 ‘CICERO’, ESG 전문 리서치 기업인 ‘Sustainalytics’와 ‘DNV GL’ 등이다. 녹색금융이나 기후 전문 기관들이다. 녹색금융 대상이 넓은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은 이미 재새에너지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어, 그린워싱 논란의 소지가 자체도 적다.

EU는 나아가 녹색채권 표준안 규정을 어기면 벌금 부과, 채권 발행 중지 등 강제적인 법적 제제 수단을 도입했다. 녹색채권의 수익성은 높은 신뢰 위에서 가능하다. EU가 녹색채권의 신뢰성을 높이려 노력하는 것 역시 유럽 채권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한국법제연구원 ESG법제팀 최유경 연구위원은 “채권 발행 시점 외에도 주기적, 또는 간헐적으로 권위 있는 주체에 의한 관리감독도 필요하다”며 “무분별한 성과 위주의 녹색채권 발행을 지양하고, 과도한 녹색에 대한 강박 역시 줄여야 한다. 이것이 시장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고 제안했다.

※본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33조 녹색채권 어디에 > 데이터 확인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8KlLYwOqEqwFaTZLnSKnv5b4f0TgRvvfhVT9xgDtD-w/edit?usp=sharing

※ 데이터 확인 '바로보기'는 부산일보 홈페이지에서 실행됩니다.(필요시 URL을 복사하여 붙여 넣으면 테이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