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자유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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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글래디에이터 Ⅱ'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글래디에이터 Ⅱ'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진 검투사 ‘막시무스’(러셀 크로우)의 모습이 생생하다. 열광과 광기의 콜로세움, 역동적인 액션과 인물들 간의 들끓는 파토스까지 2000년 개봉한 ‘글래디에이터’는 놀라운 영화였다. 그로부터 2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글래디에이터 Ⅱ’가 개봉했다. 1편에 이어 2편도 직접 연출한 감독 리들리 스콧은 전편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한 스케일로 고대 로마 시대를 완벽히 재현하며 왕의 귀환을 알렸다.

‘글래디에이터’ 1편이 전쟁 영웅에서 노예로 전락한 ‘막시무스’가 황제 ‘코모두스’의 폭정 아래 신음하는 로마와 자신의 명예를 찾는 여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2편은 그로부터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시작한다.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누마디아 왕국의 실질적인 지휘자 ‘하노’(폴 메스칼)는 정복자 로마군에 맞서지만 압도적인 화력과 병사를 가진 로마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하노’는 이 전쟁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포로가 되어 로마로 끌려온다. 고대 로마 시대로 단숨에 진입하는 이 오프닝은 ‘하노’에서 ‘루시우스’라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 '글래디에이터 Ⅱ'

정국 혼란 속에서 만들어지는 영웅

검투, 살라미스 해전 장면 인상적

하노는 어린 시절 ‘루시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고귀한 존재였지만 황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로마 바깥을 떠돌았다. 아내를 만나 누마디아 왕국에 정착했지만 노예가 되어 로마로 돌아온 하노의 인생은 영웅의 일생과 닮아있다. 하노는 지금의 로마가 자신이 알고 있던 그 로마가 아님을 눈치챈다. 로마 제국은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고 통합하며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폭군 카라칼라·게타 쌍둥이 황제 통치 하에 안에서부터 썩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발톱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검투사들의 주인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는 ‘하노’를 이용해 황권을 차지하고자 한다. 폭압적인 지도자로 사회가 안에서부터 무너질 때, 오히려 권력의 권위는 추락하고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각축하게 되는 것이다.

아들이 아닌 로마를 잘 통치할 수 있는 이에게 권력을 계승하고자 했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꿈꾸던 로마는 무너졌다. 권력을 잡은 그의 아들 ‘코모두스’는 광기에 사로잡혔고, 뒤이은 쌍둥이 황제들 역시 시민들의 자유를 짓밟고 자신의 허영과 쾌락을 채우는데 바쁘다. 시민에게 자유가 없다면 로마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말로 로마의 미래를 꿈꿨던 황제는 과거의 인물이 되었지만, 그의 질문은 현재에도 유용하다. 지도자의 자질을 가지지 못한 자가 나라를 다스렸을 때 고통받는 건 과거에도 현재에도 시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콜로세움에서의 결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만큼 콜로세움이 중요 공간으로 등장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욕망을 위해, 우매한 시민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해 콜로세움은 화려한 혈투를 제공하지만 정작 콜로세움은 시민을 각성시키고 영웅을 만들어내는 장이다. 콜로세움에서의 혈투 끝에 하노는 자신이 누구인지 각성하며 비로소 로마의 꿈을 이룰 ‘루시우스’가 된다. 그 유명한 “권력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이 어떤 왕이 될 것인지 선언하는 말이다. 열광과 광기 사이에서 결투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결국 무능력한 황제의 권위에 맞선다. 자유를 잃은 시민은 왕을 저버리고 광기 어린 폭도로 변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사실 ‘글래티에이터’ 2편의 서사는 진부한 면이 있다. 하지만 2세기 로마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세트장과 마지막 전투 ‘살라미스 해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치 당시 콜로세움 안에 있는 듯한 착시감이 들 정도다. “그 당시 로마의 냄새가 날 정도로 고증에 공을 들였다”는 노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영화를 보는 즉시 수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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