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단풍 아니고, 소나무재선충병입니다"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재선충병으로 전국 산림 붉게 변해
기후변화 탓 최근 들어 매년 창궐
지자체 인력·예산 부족해 방제 한계
특별재난지역 지정 등 국가 나서야

단풍의 계절이다. 완연한 가을을 넘어 초겨울에 접어드는 시점인 만큼, 전국의 산이 온통 붉게 물들고 있다.

등산객은 물론 고속도로와 국도를 운행하는 차량에서도 창밖으로 단풍 든 산을 바라볼 수 있다. 최근 경남 창원과 대구시를 연결하는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창원~밀양을 연결하는 25호선 국도를 달리다보면 주변 야산이 온통 붉게 변했다. 완연한 가을인 만큼,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착각이다. 단풍인가 하고 자세히 보면 소나무가 죄다 재선충병에 걸려 죽어 있다. 상록수인 소나무 군락지에서 활엽수처럼 단풍이 들 수는 없는 일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산림의 상징이자 민족의 정신이 담겨 2022년 ‘국민 선호나무’ 조사 결과 37.9%가 좋아하는 1위 수종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유독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자 재선충병으로 인한 소나무 고사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50년에는 남한 지역 소나무 55%가 고사한다는 연구결과도 제시됐다.

재선충이 창궐하는 원인으로는 기후변화가 꼽힌다. 재선충은 식물에 기생하는 선충의 일종이다. 재선충병은 1mm 안팎의 재선충이 북방수염하늘소·솔수염하늘소 등을 매개로 소나무류에 침투, 양분 이동을 막아 나무를 고사시킨다.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가 지난달 기준으로 경남에만 79만 2000그루로 집계됐다. 산림청은 올해 재선충병 피해가 심한 경남 밀양시와 경북 경주·포항·안동·고령·성주, 대구 달성 등 전국 7곳(4만 4878.6ha)을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했다. 특별방제구역은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급증해 전량 방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이다.

재선충병의 빠른 감염 확산과 달리 방제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전문 인력과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밀양은 경남에서 유일하게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예찰과 방제를 위한 전담인력은 담당자 1명뿐이다. 보다 못한 경남도는 최근 재선충병 전담 TF팀(3명) 신설을 밀양시에 요청했다.

방제 예산 상황은 더 심각하다. 밀양시는 202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3년간 353억 1800만 원을 투입해 34만 327그루에 대한 방제 작업을 벌였다. 한 그루 방제에 설계·시공·감리 비용까지 포함해 15만 원(국비 70%, 도비 9%, 시비 21%)이 투입되지만, 올해 확보된 방제 예산은 20% 수준인 92억 원에 불과하다. 올해 상반기까지 10만 7000그루를 벌목하고 훈증·파쇄했지만, 나머지 40만 그루는 방치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인근 양산시도 예산 부족으로 지난달 말까지 피해 고사목 5만 2000그루 중 52%인 2만 7000그루만 제거할 방침이다. 백신도 없는 상태여서 감염된 소나무는 100% 고사한다. 특히 재선충 번식력은 암수 한 쌍이 20일 후 20만 마리로 불어난다. 감염 속도가 고속도로라면 방제는 비포장도로인 셈이다. 피해목을 빨리 제거해 확산의 연결고리를 끊어내야 하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잠재적 피해 규모를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애만 태우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남도는 최근 재선충병을 국가 재난 차원에서 대응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현행 특별방제구역만이라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울산시도 국가 재난 차원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관련 법령 개정과 재난안전특별교부세 지원 등을 건의했다.

특별재난지역은 사고나 자연재해 등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의 긴급한 복구 지원을 위해 대통령이 선포하는 곳이다. 특별재난지역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자연·사회 재난을 당한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 능력만으로 수습하기 곤란해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지정할 수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지역, 2000년 동해안의 고성·삼척·강릉·동해·울진 등에 발생한 사상 최대 산불피해지역 등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산림병해충인 재선충병을 전염병 등 국가가 관리하는 재난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소나무 재선충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사람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수분이 빠진 소나무는 지탱하는 힘을 잃어 외부 충격에 약하다. 따라서 길가나 민가, 문화재 인근의 소나무가 쓰러지면 언제든 사람이나 문화재가 다칠 위험성이 있다. 특히 재선충에 감염된 나무는 잔뜩 마른 탓에 휘발성이 강해 산불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 장마철 산사태 위험도 키운다. 이젠 재선충병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차원의 방제 대책 마련과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아열대 산림 수종 전환 사업이 시급하다.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