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역 예타 사업, 언제까지 정부만 봐야 하나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 기재부 예타 대상 선정
지지부진한 부울경 광역철도 전철 밟을 우려
지역에선 특별법 제정 노력, 국회 통과는 난망
지역 현안 사업, ‘국가 주도 시행’ 요구 커져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가 기획재정부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이하 예타)에 포함됐다 하니 환영할 일입니다. 예타 결과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부울경 광역철도를 보면 비슷한 길을 갈까 봐 걱정이 앞섭니다. 필요한 지방 국책사업은 예타 면제와 국가 시행이 이뤄져야 합니다. 관련 법 제정이나 개정이 필요합니다.”
경남 양산시의 한 간부가 며칠 전 동남권 광역철도의 예타 포함 사실을 접한 뒤 본 기자에게 건넨 푸념이다.
〈부산일보〉와 지역 정치권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양산 웅상~울산을 잇는 부울경 광역철도는 지난해 5월 기재부 예타에 포함됐다. 결과 발표가 올해 6월 예정이었으나 9월로 늦춰졌다가 다시 12월로 연기되더니 결국 내년 상반기까지 밀렸다.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노선을 단축한다’ ‘단선으로 건설한다’ ‘사업이 물 건너갔다’ 등의 소문도 나돈다. 이 사업은 예타 신청 때 트램에서 경전철로, 웅상시가지 지하 건설로 사업비가 1조 600억 원에서 3조 400억 원으로 급증하면서 경제성 논란을 예고했고, 결국 발표도 지연되고 있다.
KTX 울산역~양산 상·하북~김해 진영을 잇는 동남권 광역철도도 국토교통부의 ‘사전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사타)에서 10개월 이상 결과 발표가 늦어져 예타 통과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양산시가지 지하 건설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업비(1조 9345억 원)가 사타 때보다 증액돼 경제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경제성 확보를 위해 노선 변경, 역사 수 축소 등의 계획 변경과 이로 인한 결과 발표가 늦어지는 등 부울경 광역철도와 비슷한 길을 갈 가능성이 점쳐진다.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짓는 예타는 1999년 예산 낭비를 줄이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예타는 인구나 경제력이 집중된 곳일수록 높게 나오는데 돈과 사람이 몰려 있는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유리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도입 20년이 지나면서 인구소멸 위기 등 시대 변화도 반영하지 못한다. 예타가 수도권 일극 주의를 심화시킨 결과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잇따른 이유다. 정부는 ‘예산 낭비, 선심성 사업’이라는 시민단체 등의 지적에도 일부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해 주지만,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방 사업이 훨씬 많다.
어렵게 예타를 통과하더라도 지방 현안 사업들은 시행률도 떨어진다. 결국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수도권 인프라만 계속 확충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실제 윤영석(양산갑) 의원이 국토부 등으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런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윤 의원이 ‘1~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06~2030년)’과 ‘광역교통 시행계획’ ‘도시철도법상 도시철도망 구축·완공 노선(공사 중 포함)’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은 계획 노선 67개 중 45%인 30개가 완공됐지만, 비수도권은 계획 노선 75개 중 완공된 것은 19개(25.3%)에 불과했다.
철도 건설에 투입된 사업비도 수도권은 106조 원을 계획해 45조 원이, 비수도권은 82조 원을 계획해 22조 원이 각각 투입됐다. 항공 정책 사업비도 인천국제공항은 지난 10년간 10조 원이 투자됐지만, 김해국제공항을 포함한 지방공항은 8400억 원에 그쳤다. 최근 5년간 광역교통 개선 대책 집행 현황도 수도권에 4조 8000억 원이 투입됐지만, 비수도권에는 380억 원이 들어갔다.
국회에서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개별 사업을 지정해 예타 면제 등을 규정한 특별법을 발의하고 있지만, 통과가 여의찮다. 윤영석·김태호(양산을) 의원이 최근 각각 동남권 광역철도와 부울경 광역철도의 예타 면제 등을 규정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나아가 윤 의원은 부울경을 하나의 특별시로 만들어 독자적인 재정·행정권을 행사하는 가칭 ‘부울경특별시’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방 개별 사업마다 예타 면제와 국가 시행을 규정하는 특별법을 매번 발의할 수는 없다. 행정이 공공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 조성하는 ‘조장 행정’을 하듯이 ‘지방 국책사업 중 필요한 사업에 한해 예타 면제와 국가가 신속하게 시행’하는 관련 법 제정이나 개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다.
부울경 광역철도와 동남권 광역철도는 765만 명이 거주하는 부울경을 하나의 교통망으로 연결하면서 1시간 생활권을 현실화한다. 인적·물류 교류 활성화로 경제공동체 구축에 도움이 되고, 시도민 교통 불편 해소로 인구 유출을 방지하는 효과도 기대되는 등 ‘조장 행정’이 필요한 사업이다.
정부 역시 수도권이 갈수록 모든 것을 빨아들이면서 저출생 야기는 물론 국가 경쟁력마저 떨어뜨리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국가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ktg660@busan.com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