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는 도시가 되는 방법
한영숙 건축사 (주)싸이트플래닝건축사사무소 대표
‘유엔위크’ 진행 부산에 세계인 관심
유엔 산하 해양 국제기구 유치 필요
대륙·해양 잇는 도시로 설립에 적합
부지 마련 쉽고 해양 인프라도 충분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정책에 부합
지난 8월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유엔사무국을 방문해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도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유엔사무국은 사무국뿐만 아니라 호텔, 주택, 학교가 들어있는 작은 도시였다. 1978년 건립돼 국제원자력기구(IAEA),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등 주요 국제기구가 있어서 실무자, 자원봉사자, 각국 대표단 등의 다양한 회의와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세계에서 모인 인재 약 5000명이 일하고 연간 12만 7000명이 방문을 한다고 한다. 이곳이 빈의 국제적인 이미지를 강화하고 글로벌 마이스(MICE) 산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이 부산에서 펼쳐지면 얼마나 좋을까.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부산에서 세계인들이 모여 지구에서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한 공동 노력과 해법을 논의를 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있을 때 2029년 개항할 가덕신공항과 관광·마이스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이 국제기구를 갖춘다면 ‘글로벌 허브도시’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 위에 하루빨리 올라탈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싶다. 무엇보다도 부산은 국제기구에 가장 적합하고, 국제기구가 필요한 도시다.
최근 부산의 글로벌 허브도시 추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올 2월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 원도심인 북항 재개발 지역을 글로벌 허브도시의 핵심인 국제업무 지구로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또 “2027년까지 해양레포츠 단지, 오페라하우스, 수변 테마파크 등 해양관광 시설을 갖추고 상업, 문화, 국제행사가 결합된 1단계 국제기구 개발을 추진하고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기술과 어젠다가 등장할 때 관성을 떨쳐내고 모험과 도전이 필요하다. 도시도 매우 유사하다. 도시 기능의 탈바꿈을 위해서는 우리가 하지 않았던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 유엔사무국을 부산에 유치하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핵심기관으로 해양환경 관련 국제기구를 상정해 보았다. 유엔이 2015년부터 SDGs(지속가능 개발 목표)를 채택해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하는 것과도 부합된다. 부산은 동삼혁신지구에 다양한 해양 관련 기구가 집중돼 있고, 한국해양대와 부경대에 해양·수산·물류 관련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는 도시여서 적합한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미국 뉴욕 유엔본부와 함께 스위스 제네바, 오스트리아 빈, 아프리카 나이로비에 각각 유엔사무국이 있다. 해양과 관련해서는 영국 런런에 국제해사기구(IMO)가 있지만,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에는 유엔사무국이 없다. 아시아·태평양 일대 인류의 공동 자산인 바다를 관리하는 사무국을 부산에 설치해 해양환경과 해양안전, 물류 분야의 국제 협력을 강화하는 국제기구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유엔녹색기후기금(GCF)이 10년째 운영 중이고 직·간접 효과가 연간 1000억 원이 넘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제 무역과 해상 운송의 중심지인 부산을 가진 한국이 IMO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부산의 국제 해양기구 유치는 필요하다.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가 있는 부산에서는 지난 24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19일간 세계 평화의 소중함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생각해 보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 ‘유엔위크’가 열리고 있다. 다음 달 11일에는 유엔참전용사를 기리는 국제 추모식 ‘턴 투워드 부산’이 거행된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는 부산이 유엔 관련 국제기구 유치를 통해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미래의 공간, 평화·공존·배려·존중을 이야기하는 국제적 도시로 전환할 때이다. 평화와 인권에 이어 지속가능한 미래 환경, 인류의 공동 자원인 해양의 환경성 등을 논의할 수 있는 도시가 부산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북항 재개발 사업지는 국제기구 설립에 적합하다.
빈의 유엔사무국은 1년에 1유로의 점용료를 오스트리아 정부에 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에 국제기구를 쉽게 유치하는 방안을 담은 규정을 두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앞서 언급한 일들이 실현되어 부산이 국제적인 경제·관광·마이스 중심지로 기능할 때 세계적 추세인 변화의 파도에 쉽게 올라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