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반려 애니메이션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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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크리스 샌더스 영화 '와일드 로봇'
로봇과 동물의 공존 이야기 담아
자연 생태계와 인간의 역할 고민

'와일드 로봇'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와일드 로봇'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 등을 다룬 애니메이션은 ‘반려’를 주로 이야기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동종’이 아니라 ‘이종’이 함께하는 삶이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인간이 빠져 있더라도,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많다. 최근 개봉한 ‘와일드 로봇’은 로봇과 동물이 동반자가 된다는 설정으로 다른 반려 애니메이션과 차별점을 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하늘에서 상자가 떨어진다. 상자 속에는 로봇 ‘로줌 유닛 7134’(로즈)가 들어 있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로즈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동물들만 있는 야생의 섬에서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게다가 무인도에서 로즈가 부서지지 않고 버티는 건 힘겨워 보인다. 다행히 로즈에게는 환경에 적응하고 행동을 모방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이 탑재되어 있다. 이내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의 모습을 모방하며 동물들 곁으로 다가가지만 생김새가 다른 로봇에게 곁을 내어줄 리 만무하다.

무인도가 목적지가 아니었음을 감지한 로즈는 본사로 귀환을 시도하지만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던 동물들은 급기야 로즈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고, 함께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로즈는 어쩔 수 없이 쫓기는 신세가 되고 조용했던 무인도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이때 로즈는 우연히 기러기 둥지에 홀로 남겨진 알을 발견하고, 그 알을 훔치려는 여우 ‘핑크’가 합세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을 깨고 나온 기러기 ‘브라이트빌’은 눈을 떠 처음으로 본 로즈를 엄마로 여기며 따른다. 하지만 로즈에게 빌은 도움을 줘야 할 대상일 뿐이다. 겨울이 오면 남쪽으로 떠나는 기러기들의 습성에 따라 빌도 무리들과 떠나야 하나, 작고 약하게 태어난 빌은 하늘을 나는 것은 고사하고 물에 뜨는 것도 어렵다. 방대한 지식을 가진 로봇 ‘로즈’와 무인도를 잘 아는 여우 ‘핑크’는 기러기 ‘빌’을 위해 작전을 세운다.

함께 어울려 살 수 없는 로봇과 기러기, 여우는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관계도 변화한다. 특히 로즈는 빌이 길을 잃을까 혹여 다치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이다. 기계적으로 빌을 대하던 로즈가 달라진 것이다. 로봇인 로즈가 엄마를 학습했다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로즈의 행동을 학습의 결과로 보기에는 의구심이 든다. 빌을 보살피고 보호하는 것은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로즈를 빌도 의심 없이 엄마로 여긴다. 기러기 빌을 잡아먹으려고 했던 핑크도 빌의 자립을 응원하는데 마치 가족처럼 보인다.

이제 로즈를 감정이 없는 로봇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로즈는 이별을 슬퍼하고 사랑하는 이를 지켜야 함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로즈가 인간화되었다기보다는 시스템의 오류나 사랑이라는 마음이 새롭게 입력된 것이라 보는 게 적절해 보인다. 물론 그 이유를 애니메이션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섞일 수 없다고 믿었던 존재가 서로의 반려가 되고 변화한다는 점에 의미를 두면 어떨까 싶다.

로즈의 변화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꿀 수 있게 하며 누구와도 연대할 수 있음을 알린다. 여우, 게, 비버, 곰, 사슴 등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동물들이 싸움을 멈추고 혹독한 추위를 함께 견뎌내는 장면에서는 인류애마저 느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동물을 소유하려 하는 원흉이 누구인지 떠오르게 한다. ‘와일드 로봇’에는 인간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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