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브루크너 9번, 느리고 깊은 곳으로
음악평론가
올해는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1896)가 태어난 지 꼭 200년 되는 해이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빈 필하모닉은 1월 1일 신년 음악회에서 이례적으로 브루크너의 곡을 연주했고, 2020년부터 시작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녹음도 마무리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월에 부천 필하모닉이 교향곡 6번을 연주한 것을 시작으로 KBS교향악단, 서울시향, 대구시향, 광주시향 등이 모두 브루크너 교향곡을 레퍼토리에 넣었다. 부산시향도 10월 1일에 홍석원의 지휘로 교향곡 4번을 연주했다. 11월에 내한하는 사이먼 래틀 지휘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도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가지고 온다.
브루크너는 모든 면에서 느리고 늦은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린츠의 성 플로리안 수도원에서 연주했고 인생 중반까지 수도사 같은 삶을 살았다. 그가 빈으로 나와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한 것은 나이 43세나 되어서였다. 그러나 발표하는 곡마다 혹평이 따랐다. 흔히 음악에는 주제 선율이 있는데, 브루크너의 음악은 뚜렷한 선율 대신 복잡한 음향과 화성의 연속이다. 게다가 길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어렵고 지루하다”라는 것이다. 음악계는 그를 시골뜨기 취급했고, 빈 필하모닉이 연주를 거부한 적도 있다. 그가 청중의 인정을 받은 것은 나이 60세가 넘어 교향곡 7번을 발표할 때쯤이었다.
브루크너는 1896년 10월 11일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총 11개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앞의 두 곡은 스스로 습작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해서 번호를 매기지 않았고, 번호로는 9번 교향곡까지 작곡했다. 그나마 마지막 곡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작곡 중에 두 가지 말을 남겼다. 하나는 “이 작품은 사랑하는 신에게 바친다(Dem lieben Gott)”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혹시나 내가 마지막 악장을 완성하지 못하면, 3악장 뒤에 나의 ‘테 데움’을 이어 연주하라”라는 것이었다. 마치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할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결국 4악장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오늘 세상을 떠났다. 신기하게도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교향곡과 같은 D단조로 되어 있다.
마지막 교향곡의 3악장 아다지오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극적인 상승으로 시작한다. ‘느리고 장중하게(Langsam, feierlich)’라는 지시어처럼, 곡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로 천천히 천천히 흘러간다. 그는 이 악장을 ‘인생에 대한 작별 인사’라고 표현했다. 브루크너를 특별히 사랑하던 카라얀 지휘로 1978년 빈 무지크페라인에서의 영상을 다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