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일 수 있어?
영화평론가
이언희 감독 ‘대도시의 사랑법’
우리 사회 차별과 편견 꼬집어
소설 원작 살린 연출력 돋보여
최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하고 있다.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와 ‘댓글부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까지 모두 소설이 원작인 작품이다. 게다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더 개봉된다고 하는데, 이는 단순히 문자를 영화로 옮기는 것이라 치부할 수 없다. 소설 원작 영화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어 관객들에게 공감을 끌어낸다. 또한 이들 영화를 보면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연출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과 영화가 서로 다른 매체임을 인식하게 한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중 단편 ‘재희’를 이언희 감독이 영화화했다. 소설에서 영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추가되며 한편의 청춘물이 완성되었는데 감독의 연출력이 특히 눈에 띈다. 이언희 감독은 데뷔작 ‘…ing’(2003)를 통해 감성적인 로맨스를, ‘미씽: 사라진 여자’(2016)에서 미스터리를 통해 여성 서사를, ‘탐정: 리턴즈’(2018)에서는 추리와 코미디까지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는 20여 년이 지나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다시 ‘사랑’을 말한다. ‘...ing’에서 그렸던 차분하고 서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불완전해서 불안한 그러나 자유로운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스무살, 누구의 눈치도 보는 법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김고은)와 세상과 거리 두는 법에 익숙한 흥수(노상현)는 우연한 계기로 한집에 살게 된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두 사람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가십의 대상이 된다. 이후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의 삶에 지지를 보내며 1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다. 이때 남녀가 한 공간에 산다고 하면 사랑 이야기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진부한 전개를 따르지 않는다.
이 영화는 여타의 청춘 로맨스물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과 편견을 말한다. 성소수자 흥수는 자신의 성 정체성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있는 듯 없는 듯 학교생활을 하고, 잘 놀고 잘 표현하는 재희의 자유분방함은 함부로 손가락질해도 되는 존재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아주지 않는 사회에서 재희와 흥수는 주눅이 들지만, 함께 있기에 고통을 견딜 수 있어 보인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재희와 흥수의 우정을 그리는 동시에 그들 각각의 사랑에도 집중한다. 흥수는 누구를 만나도 깊이 사랑하려 들지 않는다. 혹여나 사람들이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될까 봐 언제나 상대와 거리를 두며 일회적인 사랑을 한다. 헤어져도 상처받지 않은 척, 쿨한 척 돌아선다. 반면에 재희는 매번 진실한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사랑은 험난하기만 하다. 특히 재희는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취향도 바꿀 정도로 사랑에 헌신적이지만, 그 사랑 때문에 폭력 앞에 놓인다.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은 미숙한 사랑으로 한 번쯤 울고 웃었던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상처받았을 때 나의 곁에서, 나와 함께 있어 주었던 어떤 상대를 떠올리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퀴어를 소재로 한 영화는 무겁고 어두울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도시의 사랑법’은 가볍고 경쾌한 연출로 유쾌하게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들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데이트 폭력 등은 현실에서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흥수와 재희가 당하는 폭력은 분명 다른 층위이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폭력은 내가 겪을 수도 혹은 내가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