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딥페이크 성범죄와의 전쟁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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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연 기획취재부장

26일 국회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통과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 강화 근거 마련

솜방망이 처벌 안 될 사법부 의지 중요
형사처벌 안 받는 10대 위한 교육도

텔레그램 채널 운영자에 광고비 분배
범죄 수익 차단 위해 규제 강화해야

지난 26일 국회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통과했다. 제작 때 처벌 최고형을 5년에서 7년으로 늘리고, 시청하거나 소지, 구입, 저장 때에도 3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을 통해서는 성착취물을 이용해 아동 청소년을 협박 강요했을 때 처벌하는 조항도 만들었다.

전국의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 학교 명단이 SNS에 유포된 지 한달 만의 일이다. 올해 초 미국의 유명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딥페이크 성범죄물이 전 세계적으로 공분을 산 후, 국내서도 피해 소식이 간간이 전해졌다. 같은 학교 학생이나 교사의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만들어 판 고등학생이 경찰에 잡히거나 대학별로 여학생들의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공유된다는 보도들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이 신종 성범죄의 심각성은 공유되지 않았다. 그 사이 텔레그램에서는 ‘지능(지인능욕)방’, ‘겹지(겹지인)방’이 20만 명 넘는 회원 수를 자랑하며 활개를 쳤고, 피해자는 늘어만 갔다. 그러다 8월 말 한 중학생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 학교 명단이 X(옛 트위터) 등에 공유되면서 전국의 초·중·고교는 발칵 뒤집혔다.

명단에 포함된 학교 학생을 포함해 많은 10대 여학생은 혹시나 자신도 피해를 입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텔레그램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피해자인 줄 몰랐다가 그제야 피해를 인지한 학생들이 속출했다.

언론에서는 연일 딥페이크 성범죄물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고, 교육청과 경찰청에서는 긴급 TF팀을 만드는 등 대책을 쏟아냈다.

국회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은 한 달 동안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결과물이다. 처벌 사각지대를 보완했다는 점에서는 한발 전진한 것이긴 하지만 이번 법 개정만으로 딥페이크 성범죄에 면밀하게 대응하기는 부족하다.

우선 사법부의 처벌 의지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그동안 법이 있어도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딥페이크 성범죄자 확정판결을 받은 112명 중 실형은 43명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게다가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의 대부분이 10대로, 상당수가 형사 처벌이 아닌 보호처분 대상이다. 형벌의 강화만으로는 범죄 예방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현재처럼 학교 폭력 예방 교육 중에 스쳐 지나가듯이 실시하는 것으로는 교육 효과를 크게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딥페이크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느끼는 피해 정도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가해자는 단순한 놀이로 생각하지만 피해자는 인격 말살을 경험한다. 이 둘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공감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플랫폼 기업의 불법 행위 방조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텔레그램은 2019년 불법촬영물을 공유하는 N번방 사건으로 성범죄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성범죄뿐만 아니라 마약, 사기 등 각종 범죄 도구로 활용되지만 그동안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규제를 강화했다가 관련 산업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디지털 범죄 특성상 피해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에 강력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텔레그램은 2021년부터 1000명 이상 가입한 채널에서 광고 수익이 발생하면 채널 운영자에게 수익의 50%를 주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채널 가입자 유치에 딥페이크 성착취물은 좋은 미끼 상품이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이나 이를 만들어주는 AI 로봇 프로그램을 공유하면 보상을 해주기도 한다. 텔레그램은 단순한 메신저를 넘어 범죄로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불법은 온라인에서도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적용해 자체적인 필터링 권고와 범죄 발생에 대한 경고, 그리고 경고 누적에도 변화가 없을 땐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까지 단계적으로 대응 수위를 높이는 규제가 필요하다.

AI 기술의 발달로 탄생한 딥페이크 성범죄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각종 범죄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것처럼, 딥페이크라는 새로운 기술을 입은 성범죄의 역사도 이제 시작이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여성의 성착취를 재미로 인식하는 성문화를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성범죄 산업의 고전적인 문법을 따르고 있다는 점은 이 신종 범죄와 싸움이 지난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10대 아이들이 주된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출현은 오래된 성범죄와의 전쟁에 우리 사회가 더욱 단호해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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