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지 이름난 대학 캠퍼스, '결혼 전당'으로 화려한 변신 [별별부산] ⑥
[부산외대 만오기념관]
학교법인 설립자 기려 지은 ‘센터 건물’
이국적 외관 지녀 영화 촬영지로 인기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학교 역할 찾자”
주민에 무료 예식장 대여 서비스 시작
‘스드메’ 비용 절반 대행 업체도 연결
결혼 앞둔 부산시민 누구나 신청 가능
부산영상위원회가 발행하던 계간 소식지 ‘영화부산’의 2023년 여름호 표지. 전체 지면의 절반을 넘게 차지한 사진에는 웅장한 석조 건물 앞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다. 건물 아래 사다리꼴로 넓게 펼쳐진 계단 중간에 여러 명이 서 있고, 그 아래 평지에는 4대의 지프 차량 주변으로 무장군인과 촬영 스태프로 보이는 이들이 모여 있다. 지난해 개봉한 넷플릭스 드라마 ‘택배기사’ 촬영 현장이다.
지난 한 해 부산영상위원회 지원으로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와 영상물은 모두 118편에 이른다. 1년에 4차례 발행되던 영화부산(올해부터는 연 1회 단행본으로 발행 예정) 표지에는 그중 한 작품의 제작 현장 모습이 담겼는데, 지난해 특정 건물이 표지에 등장한 사례는 여름호의 이 석조 건물이 유일하다.
주인공은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 위치한 부산외국어대학교 만오기념관. 학교법인 성지학원 설립자인 만오 정태성(1899~1986) 박사의 호를 이름으로 사용한 '센터 건물'로, 중앙에 솟아오른 돔형 지붕과 전면부의 6개 기둥만으로도 눈길을 붙잡기 충분하다.
남구 우암동 시대를 뒤로 하고 2014년 남산동에 문을 연 부산외대는 건물을 포함한 캠퍼스 전체가 현대적이고 이국적이어서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택배기사를 포함해 조인성 주연의 영화 더 킹(2017), 보안관(2017), 남산의 부장들(2020),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가 이 학교에서 촬영됐다.
'센터 건물'답게 부산외대 캠퍼스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아래로 탁 트인 남산동 일대를 내려다보는 만오기념관은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촬영 포인트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시대 신전을 연상케 하는 만오기념관은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도 남다른 위용을 자랑한다.
정면의 출입문으로 들어서면 눈앞에 원형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홀이 나타난다. 밝은 베이지 톤의 대리석으로 마감된 바닥과 벽면 위로 원통형의 천장 샹들리에가 은은한 빛을 흘리고 있다. 만오기념관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중앙홀이다. 만오기념홀로도 불리는 이곳에서는 평소 소규모 공연과 전시회가 열리거나 박사 학위 수여식 등 각종 학교 행사도 진행된다.
설립자의 건학 정신을 계승한 학문의 전당이자 부산을 대표하는 영화 촬영지로도 이름난 이곳이 올해 들어 ‘결혼의 전당’이라는 새 임무를 맡았다.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 결혼식 장소로 제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지역 사회에 기여할 방안을 찾아봅시다.” 부산외대의 결혼식장 무료 제공 서비스는 남산동 시대 10년을 앞둔 2022년 말 취임한 장순흥 총장의 이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이후 담당 부서인 대외협력팀이 ‘코로나 암흑기를 거치며 비용 부담이 적은 소규모 예식장이 하나둘 문을 닫고 공공기관 무료 예식장마저 이용률이 뚝 떨어져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언론 보도를 눈여겨보면서 밑그림 그리기가 시작됐다.
대외협력팀의 보고를 받은 학교 본부는 곧바로 실무 작업에 착수, 만오기념홀을 결혼식 진행 장소로 낙점하고 결혼식 후 피로연 장소로 학생식당을 섭외하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결혼식은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과 휴일을 활용해 하루 최대 2회씩 여유 있게 운영하기로 했다. 또 신랑 신부와 혼주는 물론이고 하객들에게도 주차비를 받지 않기로 했다.
장소를 제공한다고 끝난 건 아니었다. 결혼식 3종 세트로 불리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 대여+메이크업·헤어) 등 천정부지로 뛴 부대 비용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역 사회 기여’라는 취지를 살리기 힘들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또 뛰었다. 학교의 취지에 공감하는 지역 결혼대행업체와 손을 잡고 시중가의 절반 정도에 부대 비용을 해결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드디어 지난 3월 16일 이곳에서 첫 결혼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한-필리핀 다문화 부부로, 가정을 꾸리고도 한동안 예식을 올리지 못하다 부산외대와 인연이 닿은 것이다. 학교는 1호 부부에게 특별히 ‘스드메’를 포함한 풀 서비스까지 무료로 제공했다. 영상콘텐츠융합학과와 항공서비스학과 학생들의 재능 기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권오경 부총장은 직접 주례로 나서 새로 출발하는 부부의 행복을 기원했다.
첫 결혼식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후 문의 전화도 제법 온다고 한다. 주로 다문화센터나 구청의 소개를 받은 이들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10월과 11월 한 차례씩 결혼식이 더 열릴 예정이다.
만오기념관 웨딩이 꼭 다문화 가정이어야 하거나, 남달리 애절하거나 특별한 사연을 가진 이들에게만 개방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와 연령, 가족 형태,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결혼식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예비부부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부산외대 대외협력팀 이승기 담당은 “만오기념관은 마치 처음부터 예식장 용도로 지어진 것으로 착각될 정도로 결혼식 사진이 완벽하게 나온다”고 자랑했다. 이 담당은 이어 “특히 영화에도 종종 나오는 외부 계단에서 드레스 촬영을 하면 웅장한 건물을 배경으로 평생 기억에 남을 인생 사진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무료 결혼식장 대여 신청은 금정구민을 포함한 부산시민 누구나 가능하다. 신청 및 문의 전화는 051-509-5203~4번으로 하면 된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