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고장’ 의령으로 ‘부자 기운’ 느끼러 갈까요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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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군 한 바퀴]

임란 첫 의병 봉기 곽재우 흔적 산재
의병박물관, 충익사에 남강 정암루도

구름다리 건너가면 ‘부자 된다’ 전설
대기업 창업주 셋 낳았다는 솥바위도
삼성그룹 호암이병철생가, 최고 명당

솔직히 경남 의령군이 부산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인 줄 미처 몰랐다. 남해고속도로 북부산톨게이트에서 의령군청까지 5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인구는 겨우 2만 6000여 명으로 경남에서 가장 작은 지자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당연히 느린 삶을 누릴 수 있는 ‘슬로 시티’여서 모든 게 여유롭고 한가로운 곳이다. 여기에서는 서두를 필요도, 조급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느긋하고 한가롭게 의병박물관과 호암이병철생가를 중심으로 의령을 한 바퀴 둘러보고 왔다.

관람객들이 경남 의령군 호암이병철생가를 둘러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관람객들이 경남 의령군 호암이병철생가를 둘러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의병박물관과 솥바위

남해고속도로 군북IC에서 빠진 자동차가 함안군 함마대로를 달려 의병대로에 접어들자마자 남강변에 ‘홍의장군 곽재우 동상’이 나타난다. 이곳이 의병 도시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인식시켜 주는 구조물이다.

동상을 지나친 자동차는 의령읍내에 위치한 의병박물관으로 향한다. 자동차는 박물관 앞에 세워도 되고 남강변 주차장에 세워도 된다. 의령군청 맞은편의 의병교를 건너자 눈앞에 거대한 의병탑이, 오른쪽에는 충익사가 보인다.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와 그 휘하에서 싸운 열일곱 장수를 기려 세운 건축물이다. 충익사에서 향을 피워 잠시 참배한 뒤 의병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사립, 공립, 국립 박물관이 있지만 의병을 주제로 한 곳은 여기뿐이다. 사실 처음에는 의병박물관 방문을 주저했다. 실망스러울 게 분명하다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전시물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의병박물관은 기대 이상이다. 실망스러울 것이라고 의심한 게 미안할 따름이다. 의병에 대한 설명이 풍부했고, 특히 정암진전투를 주제로 만든 영상물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도 재미있다고 느낄 정도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대단한 관광 명소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경남 의령군 의병박물관 의병 전투 장면 재연 영상물. 남태우 기자 경남 의령군 의병박물관 의병 전투 장면 재연 영상물. 남태우 기자

의병박물관에서 나와 왼쪽으로 10분 정도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의령구름다리가 나온다. 깊은 산속 계곡 사이에 매달린 구름다리는 더러 봤지만 시내 한복판 강 위에서 출렁이는 다리를 건너기는 처음이었다. 의령구름다리는 무서울 정도는 아니지만 꽤 흔들리는 데다 ‘다리를 다 건너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니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구름다리는 세 갈래여서 이리저리 오가면서 다양한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건너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하는 경남 의령군 의령구름다리. 남태우 기자 건너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하는 경남 의령군 의령구름다리. 남태우 기자

다시 자동차를 몰고 의병박물관에서 5분 거리인 남강변의 솥바위와 정암루로 향한다. 한자로 ‘정암(鼎巖)’인 솥바위에는 ‘반경 8km 안에서 부자가 넘쳐난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래서인지 삼성그룹, LG그룹, 효성그룹 창업자가 의령에서 태어났다고 의령 사람들은 믿는다. 사실이든 아니든 부자를 낳은 바위라면 찾아가서 기념사진 한 장 정도 찍어둘 필요는 있다. 모래사장만 누렇게 뿌려진 강에 나홀로 우뚝 선 솥바위는 정말 특이하게 생겼다. 솥바위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벽화가 보인다. 바위에서 금이 쏟아지는 장면이다. 이곳에서 기운이 닿으면 금덩이에 파묻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솥바위를 내려다보는 정암루는 곽재우 장군이 인근 정암진에서 벌어진 왜병과의 전투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정자다. 바로 앞에는 함안과 의령을 연결하는 1935년에 만들어진 트러스식 다리인 정암교가 있어 걸어 건널 수 있다.

주변에서 부자가 넘쳐 난다는 전설이 전하는 경남 의령군 솥바위. 남태우 기자 주변에서 부자가 넘쳐 난다는 전설이 전하는 경남 의령군 솥바위. 남태우 기자

■호암이병철생가와 망개떡

의령구름다리와 솥바위에서 부자가 되는 기운을 받은 김에 이번에는 정말 부자가 된 실존인물의 생가로 달려간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곳인 ‘호암이병철생가’다.

이병철생가가 있는 곳은 정곡면 장내마을이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창설자 생가여서인지 마을 입구에는 꽤 넓은 공영주차장이 만들어졌다. 아직 뜨거운 여름인데도 주차장에 적지 않은 차가 서 있는 걸 보니 꽤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부부끼리 오는 사람도 있고,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있다. 다들 부자 기운을 받으러 오는 게 분명해 보인다.

장내마을은 전체적으로 정리정돈이 잘 돼 여느 시골마을과는 달리 꽤 깔끔하다. 방문객을 고려해서 그랬겠지만 마을의 흙길을 모두 없애고 아스팔트로 덮어놓은 게 아쉽기는 하다. 뜨거운 날씨는 아스팔트 때문에 더 뜨겁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방문객들의 마음을 읽어서인지 가게를 비롯해 곳곳에 ‘부자’라는 단어가 넘쳐난다.

고 이병철 회장의 부모는 부농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생가는 시골집치고는 꽤 넓고 크다. 지금까지 다녀본 여러 생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 같다. 생가를 재단장할 때 손을 본 것인지 정원도 잘 다듬어져 전체적으로 풍요롭고 넉넉해 보인다. 생가 뒤편은 숯골산 끝자락인데, 절벽 같은 지형에 숲이 우거져 집을 전체적으로 포근하게 보호한다는 느낌을 준다. 안내문을 보니 숯골산은 곡식을 쌓아놓은 형상이어서 생가를 명당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경남 의령군 망개떡 가게에 그려진 망개떡 벽화. 남태우 기자 경남 의령군 망개떡 가게에 그려진 망개떡 벽화. 남태우 기자

돌아 나오는 길에 공영주차장 한쪽에 의령의 전통음식인 망개떡 가게가 보인다. 여기까지 와서 망개떡을 제대로 맛보지 않고 갈 수는 없다. 더운 날씨에 오래 놔두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16개가 든 한 상자만 고른다. 하나를 꺼내 먹어보니 정말 맛있다. 역시 여행은 보고 사고 먹는 재미로 다니는 것이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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