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길들여지는 개인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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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편집부 차장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소환한다. ‘1984’는 개인이 거대 시스템인 ‘빅브라더’에 잠식돼 자율성을 잃고 길들여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늘날 개인은 또 다른 ‘빅브라더’에 의해 길들여져 가고 있다.

지난달 영국 사회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괴한이 어린이 댄스교실에 침입해 세 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슬람 이민자의 소행’이란 정보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이 짤막한 문장으로 촉발된 폭동은 전국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그러나 정보가 확산된 지 몇 시간 만에 ‘가짜뉴스’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폭동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고, 1주일 넘게 이어졌다.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폭동은 왜 중단되지 않았을까?

그 이면에는 ‘확증편향’ 현상이 있다고 전문가는 분석했다. 확증편향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심리이다. 영국 폭동 가담자들에게 정보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믿고 싶었던 정보인 게 중요할 뿐이다.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자신들의 적대감을 정당화할 정보였기에 믿고 행동했던 것이다.

확증편향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가 ‘알고리즘’이라는 거대 시스템이다. 알고리즘은 현대 사회의 또 다른 ‘빅브라더’이다. 과거에는 관습, 권력 등이 개인을 옥죄는 시스템이었으나 최근에는 포털,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더 위험하다. 알고리즘은 진화를 거듭해 개인의 관심사와 선호도에 맞춰 정보를 제공한다. 이는 개인이 이미 알고 있거나 동의하는 정보만 접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개인은 다른 관점이나 반대 의견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어, 점점 자신의 생각만 더욱 강화시킨다. 알고리즘은 개인을 ‘외눈박이’로 만든다.

이미 곳곳에서 이러한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알고리즘이 제공한 달콤한 정보에 취한 나머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을 키운다. 실제로 미국 극우 집단은 ‘지난 대선이 조작됐다’는 가짜뉴스에 의회를 점거했고, 브라질 극우 세력도 선거 부정 주장에 대통령궁으로 쳐들어가기도 했다. ‘우리만 대안이고 옳다’라고 믿고 세력화하면 결국 ‘나쁜’ 집단 사고가 공동체를 갉아먹는다.

한국도 위험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2023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6명은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치적, 이념적 갈등이 우리의 삶 깊숙이 파고들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문빠’, ‘개딸’, 극우 보수단체로 이어지는 팬덤 정치의 폐해는 이미 도를 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뜻과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서는 좌표를 찍어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인공지능(AI)과 함께 갈수록 정교하게 진화할 것이다. 결국 개인이 깨어 있지 않으면 알고리즘, 극단 정치 구조 등 거대 시스템의 부속품이나 노예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개인은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니체도 140여 년 전 '초인’을 역설했다. 개인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삶을 스스로 창조하고 새 가치를 만들어가자고. 개인은 지금 거대 알고리즘 시스템의 틀에 맞서 자유를 위해 저항해야 할 시점이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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