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우리 곁의 동천, 똥천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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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콘텐츠랩본부장

한여름 역겨운 악취 풍기는 동천
시커먼 부유물 ‘둥둥’ 최악 풍경

부산 도심에 방치된 검은 물길
“무능한 지방 행정의 상징”

부산시, 계곡물로 수질 개선 시도
부끄러운 현실 더 눈감지 말아야

펄펄 끓는 여름날 모두가 흐느적거리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와, 물고기다.” “에이, 거짓말.” 누군가 피식대는 순간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물고기 떼였다. 일행들은 일제히 하천변 난간에 매달렸다. 뜻하지 않게 한여름 땡볕 길을 걷다 생긴 구경거리였다. 며칠 전의 일화가 여기서 마무리된다면 참 아름다운 풍경이겠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저 물고기 잡아서 먹으면 (먹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지.” “웩, 똥물에 사는 걸 어떻게 먹어.” 물고기가 사는 물은 푸르죽죽한 것 같기도 하고 거무튀튀 누리끼리한 듯도 했다. 수면엔 시커먼 건더기가 이리저리 둥둥 떠다녔다. 누군가 인분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이 시대 대한민국에선 있어서는 안 될, 부산에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겠지. 하수를 푹 삭힌 듯한 역한 냄새도 코를 찔렀다. 섭씨 35도가 넘는 폭염으로 하천수가 발효되고 있는 건가 하는 무식한 생각이 들었다. 괜히 이 길을 걸었다. 우리는 울렁거리는 속을 붙들고 서둘러 동천을 빠져나왔다. 저 혼탁한 물에 사는 물고기는 생명력이 대단한 걸까. 아니면 물이 보기보단 덜 더러운 걸까. 혼란스러워 잠시 따져보고 싶었지만 유쾌하지 않은 경험은 얼른 지우고 싶을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산 남구 문현혁신도시 이전공공기관 직원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과 함께 동천 ‘썩은다리’를 건널 때마다 늘 나온 불평이다. 부산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은 동천과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깊이 절망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정착해야 할 부산에 대한 이미지가 ‘동천 수준’으로 곧장 수렴된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한동안 심한 자괴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부산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하천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수준 낮은’ 도시에서 가족과 함께 평생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부정하며 도망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곳까지 떠밀려 왔나’하는 생각으로 괴로웠다는 이도 있었다. 여러 이전기관 수많은 직원들은 약속한 듯 비슷한 말을 꺼내며 혀를 찼다. “부산시가 천문학적인 돈을 들이고도 동천 수질을 못 잡는다. 무능한 지방 행정의 상징이 바로 여기 우리 눈앞의 ‘똥천’이다.” 동천 악취에 기겁하던 이전기관 직원들은 시간이 흐르자 슬프게도 나쁜 환경에 슬슬 적응했다. 거리낌 없이 썩은다리를 건너 밥 먹으러 다닌다. 하지만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서 온 방문객이 동천을 보며 눈을 찡그릴 땐 왠지 모르게 솟아오르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어렵단다.

동천을 하염없이 방치하는 듯하던 부산시가 다시 동천 수질 개선에 나선다고 한다. 바닷물을 부산진구 광무교 쪽으로 끌어와서 방류하는 부산시의 시도는 여러 번 실패했다. 하천 바닥 오염토를 걷어내는 준설 공사도 지금껏 효과가 거의 없었다. 엄청난 예산과 노력을 투입했지만 악취 풍기는 동천 수질은 여전하다. 이번엔 부산진구 성지곡수원지 계곡물을 부전천 구간에서부터 별도로 끌어와 동천에 유입시키는 방안이 추진된다. 오염토 제거를 위한 준설 공사도 다시 이어진다. 시는 하루 평균 7000t가량의 성지곡 계곡물을 동천에 계속 흘려보내면 수질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바닷물을 하루 최대 25만t씩 끌어올려 공급하는 방식으로도 동천 수질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의 거듭된 동천 수질 개선 정책 실패는 불신만 높였다. 성지곡 계곡물을 흘려 넣어 동천 물을 맑게 만들겠다는 최근 시 발표에도 반응이 시큰둥한 이유다.

동천은 부산 도심권 핵심 하천이다. 부산 최대 번화가 서면을 지나 동북아 금융중심지를 꿈꾸는 문현금융단지, 부산의 새로운 미래 공간 북항재개발지구로 이어지는 물길이다. 부산의 비전을 일구는 핵심 공간을 품은 동천. 이 물줄기에서 진동하는 악취를 방치한 채 부산의 내일을 기약하긴 어렵다. 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이전을 위한 선결 조건일 수도 있다. 만약 부산이 세계박람회(엑스포) 등과 같은 글로벌 메가 이벤트 개최에 다시 나선다 해도 더러운 동천을 외면해선 곤란하다. 전임 부산시장 시절 시는 동천 광무교~부암역 구간 물길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더불어 동천과 북항, 남항을 잇는 ‘시티 크루즈’를 띄우겠다는 장밋빛 구상을 함께 내놓았다. 냄새 풍기는 지금의 동천 모습을 보면 허황된 아이디어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맑은 물이 흐르는 동천에서 시티 크루즈를 타고 도심 곳곳을 누비는 건 공상일 뿐일까. 북적이는 문현금융단지에서 물길로 북항재개발지구와 남항을 거쳐 남포동을 오가는 구상을 현실로 이루긴 불가능한 걸까. 깨끗한 동천을 누리고 싶은 부산시민의 기대는 언제까지 헛된 꿈에 그쳐야 하는 것일까. 동천에 다시 칼을 빼든 박형준 부산시장의 의지에 희망을 걸어 본다.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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