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성당 순례하다 ‘승효상’ 만날 줄이야…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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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 성지’]

병인박해 때 순교 신석복 생가 터에 조성
바깥은 폭염인데 성지 내부 뜻밖에 선선
고목 아래서 커피 한 모금에 마음도 평온

경남 최초 한옥 성모승천성당에 반하고
천국 계단 형상화 순교탑엔 깊은 인상
승효상 설계 신석복기념성당 보곤 감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복자 신석복 마르코를 기념하는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의 신석복마르코기념성당 입구. 남태우 기자 병인박해 때 순교한 복자 신석복 마르코를 기념하는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의 신석복마르코기념성당 입구. 남태우 기자

자동차 온도계가 무려 38도를 표시한다. 잠시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가자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싸고 숨을 막히게 만든다. 깜짝 놀라 서둘러 차로 돌아간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야외 여행을 추천하기는 불가능하다.

미리 살펴두었던 세 가지 행선지 가운데 가장 나중으로 생각했던 장소로 차를 돌렸다. 바로 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 ‘명례 성지’다. 이곳은 1866년부터 6년간 이어진 병인박해 때 38세로 순교한 복자 신석복 마르코를 기리는 성지다. 그가 생전에 살았던 집이 있던 장소 일대를 성지로 조성한 것이다.


■경남 최초 한옥성당

명례 성지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다. 가지가 무성한 고목이 짙은 그늘을 드리운 마당과 하얀색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은 셀프카페와 성물방으로 이뤄진 방문객센터인 ‘라우렌시오집’이다. 고목 너머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지는데 낙동강 자전거길 구간으로 유명한 명례생태공원이다.

바깥 기온은 38도를 오르내리지만 뜻밖에 명례 성지 안은 별로 덥지 않다. 고목 앞 벤치에 앉아 공원을 내다보고 있으려니 선선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돈다. 두 눈을 감고 잠시 시원한 바람과 상큼한 공기를 음미한다. 마음은 평온하고 또 평온해지고, 차분하고 또 차분해지고, 경건하고 또 경건해진다.

라우렌시오집 앞 벤치에서 바라본 명례생태공원 전경. 고목 아래 그늘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 늘 시원하다. 남태우 기자 라우렌시오집 앞 벤치에서 바라본 명례생태공원 전경. 고목 아래 그늘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 늘 시원하다. 남태우 기자

정말 이상하고 신기하고 특별한 느낌의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감정이라면, ‘라우렌시오집’에서 따뜻하거나 차가운 커피 한 잔을 뽑아와 한 모금씩 음미하면서 이 자리에서 서너 시간이라도 앉아 있을 것 같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엉덩이를 들고 다리를 겨우 움직여 ‘라우렌시오집’ 옆에 ‘천주교 성지-명례천주교회’라는 간판이 붙은 정문으로 들어간다. 정문을 지나 길을 돌아서자 왼쪽으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을 묘사한 조각상 12개와 성모 마리아의 하얀색 조각상이 세워진 성모동산이, 오른쪽으로는 방금 본 고목보다 더 크고 가지와 잎이 더 무성한 고목이 나타난다.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 ‘성모승천성당’에서 고목 사이로 내려다본 성모동산과 명례생태공원 전경. 남태우 기자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 ‘성모승천성당’에서 고목 사이로 내려다본 성모동산과 명례생태공원 전경. 남태우 기자

조각상을 천천히 둘러본 뒤 고목을 향해 걷는다. 아주 작지만 매우 깊고 단아한 분위기가 매혹적인 기와지붕 건물이 나타난다. 1896년에 지어 경남 최초의 한옥성당이라는 ‘성모승천성당’이다. 지금 성당은 1936년 태풍 때 부서진 것을 2년 뒤 재건했다고 한다.

경남 최초의 한옥성당이라는 밀양시 명례 성지 성모승천성당 전경. 남태우 기자 경남 최초의 한옥성당이라는 밀양시 명례 성지 성모승천성당 전경. 남태우 기자

‘성모승천성당’ 내부는 우리나라 전통 시골 한옥 내부 벽을 허물고 서까래와 기둥 나무만 남겨놓은 형태다.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아 20명 정도가 겨우 앉을 면적이지만, 거기에 짙게 배인 순교자의 깊은 신심은 온 세상을 덮고도 남기에 충분하다.

‘성모승천성당’ 앞은 가리는 게 하나도 없어 고목 사이로 성모동산과 넓게 펼쳐진 명례생태공원, 낙동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당연히 이곳도 ‘라우렌시오집’ 앞의 정원만큼이나 시원하다. 도대체 이곳은 왜 이렇게 시원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이다.

경남 최초의 한옥성당이라는 밀양시 명례 성지 성모승천성당 내부. 남태우 기자 경남 최초의 한옥성당이라는 밀양시 명례 성지 성모승천성당 내부. 남태우 기자

■승효상 설계한 순교자성당

‘성모승천성당’ 앞에서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바람을 한참이나 즐긴 뒤 성지 안쪽으로 더 들어간다. 푸른 잔디가 깔린 공터가 나오는데 ‘신선복 생가 터’라는 표식이 보인다. 지금은 생가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잔디만 우거진 공간이다.

이곳에 마치 운동장 관중석처럼 생긴 구조물과 계단이 붙은 사각형 건물이 보인다. 이런 장소에 관중석과 계단이 왜 있는 것일까.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알고 보니 관중석은 관중석이 아니었다. ‘신석복마르코기념성당’의 지붕 격이었다. 생가 터와 관중석처럼 생긴 구조물 아래에 순교자 성당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형상화한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 순교탑 전경. 남태우 기자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형상화한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 순교탑 전경. 남태우 기자

그렇다면 사각형 건물은 무엇일까. 건물에 다가가 보니 ‘순교탑’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 건물은 종교적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석복 마르코의 승천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계단에는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있다. 계단은 ‘순교탑’ 구조물의 장식인데, 순교자가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형상화한 것이다. 마침 하늘의 구름이 갈라지며 하얀 빛이 새어나왔다. 순교자가 종교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승천할 때 하늘의 풍경이 저러했을까.

관중석 같은 구조물 오른쪽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신석복마르코기념성당’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성당은 정말 독특하다. 정형화된 모양이라고는 찾을 수 없고, 보는 방향에 따라 형태가 다르다. 한눈에 다 담을 수 있는 자리도 없다.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성당 전체 모습을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형 높낮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어진 성당은 어떻게 보면 성 같기도 하다. 성당 주변은 마치 성벽으로 둘러싸인 모양이다. 정문 외에는 다른 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없다.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 신석복마르코기념성당 입구 전경. 남태우 기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 신석복마르코기념성당 입구 전경. 남태우 기자

성당 내부는 하얀 콘크리트와 짙은 갈색 신도석으로 단출하게 이뤄졌다. 하얀색은 순수한 하늘나라를, 핏빛과 비슷한 갈색은 순교와 희생을 상징하는 것일까. 정말 그런 의도로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자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그렇다는 것이다.

바깥 기온은 38도를 오르내리지만 순교자성당 내부는 마치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처럼 시원하다. 실제 에어컨은 보이지 않는 걸 봐서는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열을 차단해 냉방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어떤 이가 이렇게 훌륭하고 경건한 성소를 설계했을까. 정말 궁금해졌다. 자료를 찾아보다 머리를 탁 쳤다. 승효상 건축가였구나. 그렇지. 순교자성당을 돌아보는 내내 지난달 다녀온 경북 군위군 사유원이 머리를 맴돌았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 신석복마르코기념성당 내부 신도석. 남태우 기자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 신석복마르코기념성당 내부 신도석. 남태우 기자

성당 입구 쪽 벽에는 머리를 빡빡 깎고 눈을 감은 사내의 두상이 붙었다. 뒤에는 광배처럼 보이기도 하고, 성긴 나뭇가지 같기도 한 장식이 새겨졌다. 두상의 주인공은 성당의 주인인 신석복 마르코다.

명례 성지 순례를 마치고 명례생태공원을 잠시 걸었다. 다행히 소나기가 내린 덕분에 기온은 순식간에 26도로 내려가 덥지 않다. 아름다운 성지를 돌아보고 나온 마음은 무겁다.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 신석복마르코기념성당 전경. 남태우 기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경남 밀양시 명례 성지 신석복마르코기념성당 전경. 남태우 기자

명례 성지는 종교적 신념, 정신적 순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내버린 ‘성인’이 살던 곳이었다. 밀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맞서 싸운 독립투사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이었다. 또 성폭력을 피하기 위해 투신한 아랑의 정절을 높이 사 아랑각을 세워 제사를 지내고 해마다 음력 4월 16일 아랑제라는 축제를 열었다. 옛 밀양은 그야말로 ‘충의와 의절의 고장’이었다. 그런데 요즘 밀양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집단 성폭력’ 때문에 전국적으로 시끄럽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명례 성지를 떠나는 옛 밀양인의 심경은 복잡하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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