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 칼럼] 정부와 싸워도 국민에 모멸감 줘선 안 돼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의대 증원 발표 뒤 정부 유연한 대처
의료계, 대통령 사과 요구 등 더 강경

의협 차기 회장은 되레 “정원 감축”
증원 지지하는 국민 여론과 정반대

그 사이 국민 감정 건드리는 발언도
고통 겪는 국민들의 마음 헤아려야

정부의 의대 증원 확정 발표 이후 의정 갈등이 다시 증폭되는 양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들에 대해 유연한 대처를 주문하면서 출구가 마련되는가 했지만 의료계의 증원 전면 백지화 요구와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 이어지면서 대화 분위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난달 전공의의 병원 이탈로 시작된 의료 대란 이후 의사들의 강력한 단일 대오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 중 이처럼 수십 일간 정부와 맞서면서도 여전히 기세등등할 수 있는 직역이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의사들이니까 저렇게 정부와 맞장을 뜨지, 다른 직역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쯤 되면 전 의사협회장이 의료 대란 초기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라고 했던 자신감이 빈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증원 발표 이후 정부는 대통령부터 총리, 장관까지 의료계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정부의 대화 제의가 진정성이 없거나 기만술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그동안 대화 노력이 없다가 증원 발표 이후 느닷없이 대화 제의를 한 정부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듯하다.

그런데 대통령의 유연한 대처 주문 이후 정부가 처벌이라는 수단을 일단 내려놓고 여당에서도 출구 전략을 촉구하면서 사태의 주도권이 의료계로 기우는 듯한 양상이다. 특히 차기 회장을 결정한 의협이 지난 27일 대통령에게 의대 증원 결정을 직접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새 회장으로 선출된 당선자는 더 나아가 복지부 장·차관의 파면과 대통령의 사과까지 주장하며 발언 강도를 더 끌어올렸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쌓였길래 저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강경 발언을 듣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고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의협 회장 당선자는 선거 기간 중 “의대 정원을 지금보다 500~1000명 더 줄여야 한다”며 의대 증원을 대체로 지지하는 국민 여론과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국민의 바람은 외면하고 오직 의사들의 직역 이익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언급이다. 열흘 이전의 발언이기는 하지만 “의협 회장에 당선되면 의사 총파업을 주도하겠다”는 언급도 국민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이 같은 강경 발언은 의사들의 내부 결속을 위한 것이겠지만 이를 듣는 국민들은 열패감과 모멸감의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어떻게든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앉아 해결책을 모색하기를 학수고대하는 국민들과는 갈수록 괴리되는 발언이다. 지금은 정부와 싸우는 의사들만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게 아니다. 국민들도 매우 피곤하고 감정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다. 환자나 환자 가족의 경우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이런 정서를 의료계도 헤아려야 한다.

국민들의 심사를 불편하게 하는 언사는 또 있다. 의료 대란 초기 ‘의사 불패’를 언급했던 전 의협 회장이 대통령의 전공의에 대한 유연한 대처 지시를 놓고 “이젠 웃음이 나온다. 제가 그랬죠. 전공의 처벌 못 할 거라고…”라고 비꼰 것도 마찬가지다. 앞서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뒤 “이런 나라가 싫어 용접을 배우고 있다”, “포도 농사를 짓겠다”와 같은 우월감이나 특권 의식이 묻어 나는 발언도 국민 사이에 위화감만 일으켰다. 곧바로 대한용접협회가 “의사들이 용접을 우습게 보는 듯하다”며 유감을 표하면서 모양만 구겼다.

여기다 병원에 남아 있는 생각이 다른 공보의를 조롱한다든지, 대학병원에 투입되는 군의관, 공보의들에게 태업을 종용하는 지침 등은 누가 봐도 국민들의 정서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국 의사들의 고립만 자초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지역·필수의료 강화의 한 방편인 지역의사제는 지역의 오랜 염원임을 알아야 한다. 그 전제가 의대 증원이다.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며 의협은 반발하지만 큰 틀에서 이를 위한 의대 증원을 미룰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확고하다. 이미 경상국립대는 전국 처음으로 올해 입시부터 의대 정원의 5% 수준인 10명가량의 지역의사 전형 도입 계획을 밝혔다. 그 과정에 어려움이 있다면 이 때문에 제도를 철회하는 것보다는 보완해 나가는 것이 더 지역민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사태의 책임이 있는 정부가 의료계 설득 등 돌파구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의료계도 정부와 싸우더라도 그 사이에 낀 국민들의 마음까지 아프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통을 겪고 있는 쪽은 지금 국민들이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