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 책 사랑 일념 지킨 부산문화 자부심 [부산피디아]
16. 문우당 서점
창업자 “전쟁 폐허 재기 위해 기술 중요”
해양서적·지도 명성 전국서 주문 쇄도
인터넷·대형서점 등장으로 폐업 내몰려
2대 대표, 1대 대표 철학·열정 이어받아
중앙동 이전 시민 프로그램 확대 계획
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70여 년을 버텨온 부산의 향토서점이 있다. 바로 중구 중앙동에 위치한 문우당 서점. 6·25전쟁 직후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선 기술이 필요하다’는 문우당 김용근 1대 대표의 신념에서 출발했다. 문우당은 이후 옛 혜화여고 인근 매장을 거쳐 남포동에 자리 잡았다. 문우당은 당시 부산의 문화 브랜드였다. 또한 부산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된 서점’이라는 수식만으로 문우당 서점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1대 대표의 책에 대한 우직한 신념과, 이를 이어받아 시민과 함께 하겠다는 2대 조준형 대표가 이끌어 온 부산 문화의 자부심이다. 1대 대표는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고 조 대표는 전했다. 2대 대표를 만나, 1대 대표와 조 대표가 이끄는 제2의 문우당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재기의 원동력, 책에서 찾다
1대 김용근 대표는 스물세 살이란 젊은 나이에 범내골 부근 작은 서점을 1955년 열었다. 통신학교에 자원입학해 6·25에 참전한 후였다. 당시 전기과를 전공했던 김 대표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곳에서 살아날 구멍은 ‘기술’에 있다고 여겼다. 다섯 평 남짓한 공간에서 헌책과 새 책을 함께 팔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1961년 옛 혜화여고 앞에 20평 크기의 ‘기술서점 문우당’을 다시 열었다. ‘재기’의 열망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기술서적은 문우당’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우편으로 책 주문이 쏟아졌다. 먼 곳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 손님도 있었다. 기술서적으로 유명해지자, 큰 기업체에서도 책 주문이 쏟아졌다.
명성을 얻은 문우당은 1973년, 지금의 부산 사람들에게 친숙한 남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점을 찾는 손님이 많아지면서 장소가 협소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돈보다는 책을 사랑했다. 조 대표는 “김 대표님은 우스갯소리로 내가 그 돈으로 땅을 샀으면 부자가 됐을 것이다”라며 “책으로 번 돈으로 또 책을 사고, 서점을 넓히는 그야말로 책을 사랑하시는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책만 팔았다면 문우당이 오랜 시간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 대표는 독서문화 증진에도 힘 썼다. 독서계몽을 위한 독서노트나 팸플릿 등을 제작해서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또한 지금은 사라진 ‘지하철문고’에 매년 책 2000권가량을 기부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김 대표님께서는 책 팔아서 돈을 벌었으니 시민들에게 봉사할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하신 일이었다”고 말했다.
■해양·지도 전문 서점, 문우당
문우당은 특히 해양서적과 지도를 주로 취급했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부산항과 각종 해양관련 학교들이 모여있는 부산의 서점답게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해양서적들을 보유했다. 주된 고객은 선사나 해운회사 종사자, 학생 등이다. 조 대표는 “서울의 가장 큰 서점에 가도 없는 책들이 우리 서점에는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특히 김 대표는 지도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지도를 제작해 한국을 알려야겠다는 게 지도 제작의 출발이었다. 아무리 작은 나라나 수도도 10초 이내에 찾을 수 있도록 만든 세계지도로 특허를 받았다. 지도를 제대로 제작하기 위해선 전문가가 있어야 했다. 전문적인 영역일 뿐 아니라 보안 문제도 있어 김 대표 혼자 힘으론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당시 군부대에서 지도제작에 참여한 인력을 수소문 끝에 데려왔다.
그의 지도제작에 대한 완벽함은 집착에 가까웠다. 글씨 크기가 작거나 맘에 안드는 부분이 있으면 이미 인쇄한 지도라도 다 폐기 처분하고 다시 제작했다. 세계지도뿐 아니라 부산관광안내지도, 운전자 지도 등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지도도 제작했다. 조 대표는 “국내에서는 가장 지도를 많이 가지고 있는 서점일 것”이라며 “외국지도도 많이 수입했는데, 많이 팔리지는 않더라도 누군가 원할 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자라는 그런 생각으로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힘으로 다시 일어선 문우당
굳건히 남포동을 지켜왔던 문우당도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의 등장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앞서 부산의 또 다른 대표서점이었던 동보서적이 문을 닫았고, 문우당도 2010년 10월 31일 폐업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조 대표는 문우당을 살리고 싶었다. 김 대표에게 자신이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조 대표는 “당시 대표님이 ‘자네 같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믿어 주셔서 상호와 자산을 인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1988년부터 직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여기서 만난 직원과 결혼도 했다. 그에게는 문우당이 인생 그 자체였다. 조 대표는 김 대표가 가장 신뢰하는 직원이었다.
이미 폐업을 공식화한 후였지만, 조 대표의 인수로 사실상 문우당은 단 하루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실제로는 폐업하기로 한 2010년 10월 31일에도 문을 열었다. 당시 지하 1층~5층 규모의 서점 중 1층만 문을 열어두고 영업했다. 폐업 사실이 워낙 멀리 퍼져나간 탓에 이를 바로 잡느라 고생하기도 했다. 대표와 직원들이 직접 3000여 곳을 방문해 팸플릿을 배부하고, 지역 문화 예술 행사에 참여하는 등 부단히 노력했다. 이때 시민들으로부터 받은 지폐 6장은 초심을 잃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조 대표는 “문우당에서 왔다면서 전단지를 드리니까, 지도 하나 사고 싶다고 하더라”며 “그 자리에서 돈을 받고 지도를 드렸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그 지폐들을 가끔씩 꺼내보면서 그때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시민과 함께하는 100년의 문우당
조 대표의 문우당은 이제 중앙동에 터를 잡았다. 조 대표의 문우당은 출판에 더 특화할 계획이다. 2011년 해양도서 전문 ‘해광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냈고, 2018년 문학 전문 출판사 ‘스토리팜’을 세웠다. 그 외에도 경제, 법률 등 한 분야에 특화된 출판사를 만들 계획이다.
더 원대한 꿈은 문우당을 ‘독서 살롱’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문화 프로그램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북 토크, 글쓰기 프로그램, 시 낭독회 등도 해왔다”라며 “점심 때 커피 들고 와서 앉아서 책 보면서 쉬어가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