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 늘수록 주민 떠나는 ‘핫플 골목’ 딜레마
부산진구 전포사잇길 신흥 상권
5년간 567곳 개업 917명 감소
광안리 민락동 일대도 유사 현상
주택가 소음·빛 공해 등 피해 탓
지속 가능한 상권 유지 방안 필요
전포사잇길 등 이름이 붙은 거리부터, 민락동 골목길처럼 아직 마땅한 이름이 없는 골목까지. 최근 부산의 주택가 골목에 일명 ‘○리단길’로 불리는 신흥 상권이 급속도로 형성되면서 인근 주민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주민이 지역을 떠나고 나서야 갈등이 사라지는 ‘답정너’ 식 결말도 반복되고 있다.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요즘 핫플’과 주거지의 지속 가능한 공존 방안을 정책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4일 〈부산일보〉 취재진이 대표적인 골목 신흥 상권인 부산진구 전포사잇길 일대 인구수와 일반·휴게음식점 신규 영업허가 현황을 비교해 보니, 가게 10곳이 문을 열 때마다 주민 16명이 지역을 떠났다.
구체적으로는 전포사잇길(전포1동 9·11·12·13·14·15·16·17·25통) 일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567곳이 개업했다. 2022년 148곳 개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지난해엔 80곳이 문을 열었다. 같은 기간 해당 지역 주민은 917명 줄었다. 개업 점포 수가 가장 많았던 2022년에는 1년 만에 주민 466명이 줄었다.
이런 흐름은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부산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민락동 일대 골목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리 명칭이 따로 붙여지지 않아 특정 지역으로 구획 짓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도로명 주소가 ‘민락로’인 지역으로 좁혀 살펴보니, 불과 3년 만에 음식점 75곳이 개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안리해수욕장과 맞닿은 민락로 일대는 대부분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저층 빌라나 연립·단독주택이 주를 이루는 흔한 주택가였다. 그러나 최근 SNS 등에서 입소문을 탄 음식점과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이 일대 저녁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취재진이 네이버 지도를 통해 영업시간이 확인되는 98곳의 현황을 살펴보니, 오후 10시 넘어 영업하는 가게는 59곳. 그중에서도 40곳은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영업한다.
‘핫플’ 인근에는 소음과 흡연, 빛 공해 등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이 현수막까지 내걸며 고통을 호소한다.
주거지가 관광지로 바뀌며 주민 삶을 위협해 결국 원주민을 내쫓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 현상의 한 단면이다. 동의대 관광컨벤션학과 윤태환 교수는 “지역사회 기반 관광(CBT; Community-Based Tourism)은 실제 지역 주민이 사는 곳에서 주민을 보고 주민의 삶을 경험해 보고자 하는 전 세계적 관광 트렌드인데, 그 영향으로 과거엔 겹치지 않던 관광객과 주민 동선이 겹치게 됐다”고 진단했다.
신흥 상권과 주민이 갈등을 겪다 주민이 이탈하는 형태가 ‘핫플 골목’에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지자체의 적극적 중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자체의 개입은 통상 소상공인의 둥지 내몰림 예방 등 상권 보호 목적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지자체가 도시재생사업 등 예산 투입을 통해 조성된 관광지에는 주민 보호 등에 적극 나서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전문가는 원주민 거주 환경 등 지역 고유의 매력을 상실하면, 골목 신흥 상권의 원동력인 지역사회 기반 관광의 경쟁력이 떨어져 지속 가능성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지역 주민이 생활 불편으로 떠나게 되면, 그 지역 핵심 매력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지속 가능할 수가 없다”며 “관광객 동선이나 방문객 규모 등에 규제나 규율을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를 고려한 지속 가능한 플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