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벽 '콘크리트 둔덕'… "조종사 사이에선 공공연한 문제" [무안 제주항공 참사]
로컬라이저 설치 언덕 충격 키워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 장착했어야
활주로 안전거리 국내법 미흡 주장
국제 300m이나 국내 최소 90m
추가 사고 막기 위해 이마스 절실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활주로 주변에 있던 ‘로컬라이저’(착륙유도장치)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이 지목되고 있다. ‘죽음의 언덕’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해당 구조물 설치 자체가 심각한 위험 요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국내법상 안전거리 규정 자체가 국제 안전 기준에 비해 크게 미흡하다는 주장도 거세다.
31일 항공업계와 국내외 항공 전문가들에 따르면 로컬라이저가 ‘흙더미’처럼 보이는 콘크리트 둔덕 위에 설치된 탓에 사고기가 큰 충격을 받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 기준에 따르면 종단안전구역(안전을 위해 활주로 끝으로부터 정하는 여유 공간)은 활주로 끝부터 최소 90m 거리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국토부는 240m를 권고 기준으로 제시한다. 무안공항 종단안전구역은 199m로 설정돼 있어 국토부는 규정에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와 비교하면 이 기준은 터무니없이 미흡하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조약 세부 기준에 따르면, 사고 데이터를 검토 결과 활주로를 이탈하는 ‘오버런’ 사고 중 다수가 활주로 끝으로부터 300m 이내에서 발생한다. ICAO도 종단안전구역을 300m로 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ICAO는 견고한 구조물이 300m 이내에 위치할 경우 부러지기 쉬운 구조물로 교체하거나 300m 이상 떨어진 위치로 옮길 것을 권고한다. 미 연방항공청(FAA) 역시 종단안전구역을 305m로 정했다.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국내 규정에는 맞지만 국제적 기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한 항공업계 전문가는 “무안공항의 종단안전구역이 착륙대의 끝지점에서 199m고, 로컬라이저의 위치는 그로부터 50여m 떨어진 264m인데 경계선 바로 바깥에 있었다고 규정 위반이 아니라 하는 것은 주유소 부지 바로 앞에서 담배 피운 사람이 주유소 안에서 피운 것은 아니니 문제가 없다고 변명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규정에 어긋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항시설법과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 등에 따르면 로컬라이저 등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내 구조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 그러나 무안공항 로컬라이저는 좌우 길이 58m, 높이는 4m 정도의 두터운 철근 콘크리트 둔덕에 설치됐다. 이 둔덕이 겉으론 흙으로 덮여 있어 얼핏 ‘흙 둔덕’으로 착각할 수 있는 형태다. 사고가 나자 “무안공항 로컬라이저는 조종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문제였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항공기 강제 제동장치 중 하나인 이마스(EMAS·활주로 이탈 방지시스템) 설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마스는 항공기가 적정한 착륙 지점에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를 이탈하는 오버런이 발생할 경우 비행기 속도를 급격히 줄이도록 설계한 안전장치다. 바닥에 설치하는 보도블록 형태의 이마스는 활주로를 벗어난 항공기가 해당 지역에 진입하면 항공기 무게로 부서져 바퀴나 동체를 잡아끌듯 속도를 늦춘다.
권보헌 극동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무안공항에도 이마스가 설치됐더라면 충돌 전 극적으로 정지되거나 충격파를 크게 완화시켰을 것”이라며 “규모 작은 국내 공항에 종단안전구역을 연장할 수 없다면 이마스를 설치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