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어떻게 유럽을 장악하려 했나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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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트스트림의 덫 / 마리움 반 렌테르겜

러시아~독일 잇는 가스관을 통해
푸틴의 '에너지 제국주의' 파헤쳐
각국 이해 뒤얽힌 '지정학 스릴러'

‘노르트스트림의 덫’ 표지. ‘노르트스트림의 덫’ 표지.

‘(독일)정치권은 경제 협력을 통한 대 러시아 관계 개선이 평화로 이어진다는 단꿈에 빠져있었다. 강경파 환경론자들의 압력에 원전의 위험성은 과대평가됐고, 러시아산 에너지 종속의 위험성은 무시했다. 독일은 그렇게 푸틴의 덫에 빠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4개월이 지난 2022년 6월,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실린 표지 기사의 내용이다. 기사는 당시 독일의 상황을 ‘러시아 천연가스에 중독됐다’고 표현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천연가스 악마’로 묘사했다. 2021년말 기준 독일은 전체 에너지의 13.5%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 대부분이 천연가스였다.

당시 러시아는 ‘노르트스트림’이라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자국의 천연가스를 독일로 ‘직배송’했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의 천연가스 공급을 담당했던 이 가스관은 러시아에 적대적인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발트해를 통과해 러시아~독일을 연결한다. 건설 당시 반대 목소리도 컸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가 심화돼 푸틴이 에너지를 전략 무기로 휘두를 수 있고, 가스관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배제되는 동유럽 및 발트해 국가들이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마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는 독일에 공급하던 천연가스량을 기존의 40% 수준으로 줄였다. 독일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참여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해 8월에는 노르트스트림을 통한 천연가스 공급을 일정 기간 중단하겠다는 협박까지 일삼았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가 패닉에 빠졌다. 전화(戰禍)는 크림반도에 한했지만, 에너지 대란의 먹구름은 유럽 전역을 뒤덮었다. 그리고 9월, 노르트스트림은 갑작스런 폭발 사고로 10년 간의 짧은 역할에 종지부를 찍었고, 언론들은 사고를 두고 ‘서방의 공작’이라는 폭로성 기사를 쏟아냈다.

프랑스 베테랑 기자 마리옹 반 렌테르겜은 그의 책 <노르트스트림의 덫>에서 노르트스트림의 탄생과 소멸(폭발)에 이르는 전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노르트스트림을 ‘푸틴이 잃어버린 소련의 위대함을 되찾기 위해 유럽 전역에 깔아놓은 덫이자, 유럽 한복판에 던져놓은 현대판 트로이 목마’라고 표현한다. 그런 노르트스트림을 통해 푸틴의 제국주의 야욕이 어떻게 진행됐고 어디서 힘을 얻었는지, 여기에 유럽 경제 대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이 어떻게 공모했는지를 살핀다. 그 과정에서 유럽과 러시아, 미국의 국가적 이해관계와 각 개인의 욕망, 그에 따른 오판들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책의 주요 무대는 유럽이지만 결코 유럽만의 이야기로 그칠 것은 아니다. 국제정세는 세계 전역을 걸쳐 복잡하게 얽혀있고,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푸틴은 오래전부터 에너지 제국주의를 꿈꿨지만, 오히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계기는 아시아에서 일어났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그것이 유럽 각국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자국의 원전 발전을 줄이는 대신 러시아의 값싼 천연가스에 더욱 의존하게 한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국내 상황도 오버랩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대한민국 역시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또한 여러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정치적 이해에 따라 원전과 방사능의 위험성을 부풀리거나 혹은 축소하는 일이 1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상황이 유럽과 똑같진 않겠지만, 비교해 읽으며 더욱 흥미롭다. 마리움 반 렌테르겜 지음/권지현 옮김/롤러코스터/312쪽/1만 87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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