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한 끗 차이인 ‘사람’, 이래서 한글이 좋아요”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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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말아글 / 이상금

외국인에 물은 한글 첫인상
한국어 소리 좋아 푹 빠지게
“성장 위해 외부 시각도 필요”


.<어말아글>은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글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사진은 지난 한글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4회 광화문광장 휘호 대회에서 외국인 참가자들이 붓글씨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어말아글>은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글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사진은 지난 한글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4회 광화문광장 휘호 대회에서 외국인 참가자들이 붓글씨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언젠가 유럽 여행을 할 때였다. 사람이 많은 광장 어디선가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귀에 쏙 들어와 꽂혔다. 멀리서 엄마라는 단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음을 비집고 들어왔는지 하도 신기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우리말은 이런 것이었다.

<어말아글>은 ‘어머니의 말, 아버지의 글’의 줄임말이다. 어린 시절 체화하는 언어의 뿌리와 첫인상을 의미한다. 부산대 교수로 정년 퇴임을 한 저자는 라트비아 대학에서 2018년부터 동아시아 문화와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를 향한 학생들의 관심이 일본어나 중국어보다 훨씬 뜨거웠다고 한다. 매년 전공을 선택하는 비중도 한국어가 가장 높았다. 짐작하듯이 K컬처의 힘이다. 이 책은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글과 한국어의 첫인상이 어떠한지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2부 ‘가장 아름답거나 인상에 남는 한글은 무엇일까?’에는 라트비아 대학생이 직접 쓴 한국어에 대한 인상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아름다운 말로는 예상대로 ‘사랑’을 많이 꼽았다. 한국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단어를 라트비아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해서 놀랐다고 한다. ‘사랑’이란 단어를 철자 차이가 단 한 글자에 불과한 ‘사람’과 엮어서 생각하는 학생도 꽤 있었다. ‘사랑’과 ‘사람’이 너무 비슷해서 좋다. 사람들에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사람과 사랑은 서로 옆에 있어야 마땅하다.

의외의 한글 대표선수가 ‘눈치’다. “눈치는 다른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될 수 없다. 이 단어는 한국 문화의 일부다”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비언어적 맥락을 고려하여 주변 현실을 빠르게 스캔하고 사회적 지위, 연령 및 일반 등 다양한 추가 요소를 고려하여 반응하는 능력이다’는 예리한 정의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국에서 눈치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의외로 이 단어에 호감을 느끼는 이들도 꽤 있었다. “눈치는 제일 좋아하는 한국말이다. 들을 때마다, 완전 귀여운 애교 표정 같다”는 것이다. ‘탱자가 회수를 건너면 귤이 된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꽃과 길을 합쳐 만든 ‘꽃길’도 아름다운 한글로 자주 꼽혔다. 꽃길은 문자 그대로 꽃길일 뿐만 아니라,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길과 삶을 의미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끼는 사람에게 이 말을 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기에 좋은 말인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이들이 꽃길까지 알까 싶었는데 BTS의 노래 ‘둘!셋!’에서 ‘꽃길만 걷자’라는 표현이 나온단다. K팝의 위대한 영향력이다.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쓰던 말도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니 새삼스럽게 보이는 것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들다’라는 표현이 그렇다. 라트비아의 한 학생은 이 말을 ‘손님에게 문을 여는 것처럼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고 좋아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미안하게도 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 매혹적인 말이었다. ‘고양이’를 두고 참 좋은 이름이라는 말도 새삼스러웠다. 고양이는 매우 귀여운 단어이고, 고양이처럼 정말 부드럽게 들린단다. 가운데 음절 ‘양’은 고양이가 말할 때 나는 소리와 약간 비슷하다니, 듣고 보니 그렇다.

한국어에 매료된 외국인들은 한국어는 소리가 좋아서 듣기는 물론 말하기에 푹 빠진다고 말한다. 한글은 소리의 표현을 대략 8800개 정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일본어는 300개, 한자는 400개 정도라니 한글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런 한글이지만 챗지피티 같은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꿔 가는 시대에 잘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AI 언어가 세계인의 규범이 되지 말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글이 계속 성장하려면 한국어에 대한 연구가 국내뿐만 아니라, 이제는 외국인의 시각, 외국어로서의 새로움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인식을 전혀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글의 체질을 바꾸고 면역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보물 한글을 남이 더 잘 알아본다. 이상금 지음/두두/224쪽/1만 7000원.


<어말아글> 표지. <어말아글>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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