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세계적 관심받는 한국 '4B 운동'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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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젠더데스크

외국 언론 한국 '4B 운동' 주목
주요 SNS에도 해시태그 쏟아져

비혼·비출산·비연애·비섹스 언급
여성 혐오·차별 속 생겨난 현상

국가 생존 위기이자 경고 상황
핵심 부서 여가부 수장은 공석

8년 전쯤 언론재단의 해외연수자로 선정돼 미국에 1년 정도 산 적이 있다. 그때 지역의 농민이 농작물을 직접 파는 주말 시장을 자주 이용했는데, 나의 단골 가게엔 부모님을 도와주는 친절한 소녀가 있었다. 인사를 몇 번 하고 나니 그녀가 수줍게 한국을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한국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물으니 ‘BTS’라고 답했다.

빌보드 1위를 비롯해 빌보드 뮤직어워드 3관왕, 전 세계 투어 매진 등 세계 대중음악사에 기록을 세우고 있는 BTS지만, 당시 나는 BTS를 잘 몰랐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방탄소년단’이라는 아이돌그룹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언급한 BTS가 방탄소년단이라는 걸 몰랐다. 자신의 우상 BTS의 나라에서 온 나를 특별하게 생각한 그녀에게 BTS가 누구냐고 물을 수 없었고, “굉장히 매력적인 아티스트다” 정도로 둘러댄 기억이 있다.

이후 인터넷 검색을 통해 BTS가 방탄소년단임을 알 수 있었고, 영어 이름이 방탄이라는 영어단어 ‘bulletproof’가 아니라 한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이 뿌듯했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유튜브 한국 콘텐츠를 자주 본다는 외국인을 종종 만난다. 어떤 걸 즐겨보냐는 질문에 ‘먹방’이라는 답을 여러 번 들었다. 처음에는 생소한 발음의 영어 단어인 줄 알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더니, 외국인 친구가 대뜸 핸드폰 화면을 보여준다. 이런! 한국에서도 유명한 먹방 유튜버였다. 한국의 ‘먹방’ 콘텐츠는 전 세계인이 즐기고 있었고, ‘먹방’이라는 한국말 자체가 유명해졌다. 먹방에 등장하는 한국 음식에 대해 질문을 하는 외국인을 만나는 건 신기한 일이 아니다.

한국의 인물이나 상품, 사건이 유명해지면, 이젠 한국 단어가 고스란히 세계에서 통용되는 시대이다.

최근 미국 언론의 높은 관심을 받는 한국 단어가 있다. 한국의 ‘4B 운동’이다. CNN,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해 여러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 승리한 이후 미국 여성들이 한국 ‘4B 운동’을 주목한다고 보도했다. 언론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X, 인스타그램 등 SNS에도 한국 ‘4B 운동’이 해시 태그로 달리고 있다.

‘4B 무브먼트(4B Movement)’라고 표현한 한국의 ‘4B 운동’이 무엇일까. ‘4B 운동’은 비혼(bihon), 비출산(bichulsan), 비연애(biyeonae), 비섹스(bisekseu)를 말한다. 한국에서 흔히 반대 혹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단어 앞에 한자어 ‘비(非)’를 붙여 사용하는 사례를 미국 언론이 그대로 언급한 것이다.

미국 여성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백인 보수주의 남성 집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성 학대 혐의’ ‘재임 시절 구성한 보수 우위 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점’을 고려해, 앞으로 미국에서 여성의 평등권과 자기결정권이 약화될 것을 걱정한다. 특히 Z세대 젊은 여성들이 한국의 ‘4B 운동’은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물론 한국과 비슷하게 미국도 이런 내용을 담은 기사나 SNS에 극우 남성의 과격한 악플이 달린다.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난도 있다.

외국에 한국의 ‘4B’가 소개되는 건 반갑지만, 정작 4B라는 것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빠졌다는 점은 아쉽다. 4B는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 미투 운동, 교제 폭력, 성별 임금 격차, 불법 촬영, 경력 단절, 페미니스트 혐오(미러링, 백래시 등) 등 여성에 대한 공격과 차별 속에서 여성들이 불안, 위협을 느껴 생겨난 현상이다. 사회적인 운동의 차원으로 확산시킨 것이 아니다. 한국 여성들은 차라리 데이트나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결정했고, 결혼한다고 해도 출산으로 인해 받게 될 피해를 더 이상 감수할 수 없다는 처절한 아우성이다.

사실 한국조차 4B를 젊은 여성, 혹은 페미니스트의 치기 어린 무엇쯤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부가 출생률을 올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해결은커녕 매년 출생률이 더 떨어진 건 여성들의 아우성을 잘못 해석한 탓도 크다.

전 세계가 주목한 한국의 4B는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고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동네 통장도 이렇게 오래 비워두지 않는다는데, 이 같은 위기 상황을 다루는 주무 부처, 여성가족부 장관은 270일째 공석이다. 지난달 열린 여가부 국정 감사는 장관 없이 진행된 초유의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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