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복지에서도 서울은 넘사벽인가
정경호 (사)희망을여는사람들 상임이사
한때 서면에 부산을 상징하는 백화점이 하나 있었다. 1983년 문을 연 태화쇼핑이다. 그 앞에서 사람을 만났고 어린 시절 그곳에서 부모님이 옷이라도 하나 사주면 며칠을 학교에서 자랑했다. 하지만 1995년 서울의 대형 백화점이 들어오면서 점점 외면받기 시작했다. 태화 살리기 시민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결국 2001년 10월 문을 닫았다.
굳이 한 백화점의 추억을 꺼내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점 중 대표적인 것이 서울과 지역의 차이다. 정치, 경제, 교육, 의료 등 어느 하나 서울에 집중되지 않은 것이 없다. 청년들은 졸업과 동시에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향한다. 환자는 삶을 연장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서울행 기차에 오른다.
필자가 활동하는 사회복지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예컨대 기부금도 서울에 본부를 둔 대형 복지기관에 집중된다. 국세청 홈택스 자료를 보면 국내 1~3위 규모의 서울 복지기관 3곳이 작년에 기부금 7100억 원을 모금했다. 지역의 복지기관은 연간 몇천만 원 모금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의 대형 기관들은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기부금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포털사이트 N사가 운영하는 모금 경로인 ‘해피빈’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역 기관들이 등록한 모금 글에는 몇십만 원 기부받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들 대형 기관 글에는 몇천만 원이 수월하게 모인다. 서울과 지역의 격차가 복지 영역에서도 벌어지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들 대형 기관에 기부하는 사람이 비단 서울 시민만은 아닐 것이다.
지역의 선한 재원을 지역의 이웃을 위해 집행될 수 있도록 시민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복지기관이 지역에 뿌리내릴 방법은 없을까? 우선 시민이 공감하는 전문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운영을 공정하게 하는 것이 기본일 터이다. 지역 복지계에서 20년 넘게 활동한 필자가 알기로는 지역의 전문 복지기관들은 기본적으로 이것을 실천한다. 그럼에도 서울로 기부금이 집중되는 이유는 뭘까?
부산에서 출발한 기업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본사를 서울로 옮기는 현상을 우리는 쉽게 목격한다. 본사를 서울로 옮기니 소비자의 인식도 훨씬 나아지더라는 그들의 푸념을 듣노라면 뿌리 깊은 서울 중심적 사고를 절감한다.
그렇다고 지역 기관들이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다. 필자가 활동하는 기관에는 이런 취지에 공감해 매월 몇천 원씩이라도 기부하는 시민들이 있다. 또 지역 아이들을 위한 사업에 쓰이기를 바라며 큰돈을 기부해 준 한의원 원장도 있다. 한 시민은 지역 소외계층 아동·청소년에 대한 학습 후원 활동에 어머니 장례식 조의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어려서 공부하지 못한 것을 늘 한스러워하던 모친의 뜻을 받든 것이다.
지역 복지기관들은 대개 정부 지원금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배분 사업에 목을 맨다. 기부가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몇몇 기관에만 집중된다고 “그 돈은 서울로 가니 기부하지 마시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론적이지만 시민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전문 복지기관을 지역사회에 정착시켜야 한다. 제대로 된 사업을 수행하며, 미담 등을 통해 지역 기관의 존재를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야 한다. 더불어 시민들도 지역 기관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을 활성화하는 데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지역이 먹고 살 수 없다고 푸념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