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연의 도시 공감] 우리 동네 거점 공간 활용서
(주)로컬바이로컬 대표
11월이 되면 올해가 가기 전 친구, 가족들과 송년 모임을 기획한다. 어디서 만날지, 어떤 선물을 할지 기대와 설렘을 가지면서 한 해를 마무리할 준비를 한다. 그중 장소를 탐색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조용한 공간, 맛있는 공간, 아니면 우리만의 공간 등 모임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 공간을 고민하게 된다. 가족 모임은 더더욱 그렇다. 밥 한 끼 먹기보다 각자의 성격에 따라 더 신경 써서 공간을 찾은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다. 장소가 정해지면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조건을 이야기하고 내가 선택한 장소가 맞는지 묻는다. 아니라면 다시 찾아주는 역할 또한 동네 친구의 몫이 된다. 사실 디지털매체를 활용하여 찾아 장소를 정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모임일수록 사람의 경험을 믿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추천한 공간은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 친구의 '찐' 정보 덕분에 낯선 공간도 믿고 찾아가게 된다. 결국 공간은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끊임없이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찾고 선택해야 하는 곳이다.
공간,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수단
크레타, 비온후 등 동네서점 눈길
공공과 민간 공간 간 네트워크 필요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 자생적 활성화
얼마 전 부산진구생활문화센터장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부산진구생활문화센터는 지역 교육공동체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운영 초기에는 청소년 중심의 거점 공간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였으나 현재는 10대부터 80대까지 모든 세대가 참여하는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이유는 이용자의 공간 활용이 결정적이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학생들이 방과 후 학원 가기 전 잠시 1시간 정도 기다리는 안심 공간, 어르신에게는 혹한기와 혹서기를 피할 수 있는 공간, 청소년들에게는 스터디 모임 공간, 동네 작은 동아리모임 공간 등 계절별 시간대별 이용자들이 활용도를 높여 지역 주민들의 대표적인 거점 공간이 되었다.
전포동에는 ‘크레타’라는 작은 서점이 있다. 이 서점의 힘은 만만치 않다. 일일 책방지기를 모집하고 작가와 관객이 만나는 북 토크를 진행하여 〈여행의 이유〉 김영하 작가와 손웅정 감독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2층에 위치하고 20평 남짓 작은 공간임에도 1년 365일 책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망미동의 ‘비온후’ 책방은 작은 갤러리 ‘보다’를 운영하여 지역의 작가들을 발굴하는 역할을 하며, 아침마다 동네 조찬모임 커뮤니티를 몇 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동래의 ‘노프로그램’이라는 카페도 있다. 사람들은 금요일마다 독서에 집중하며 일상에 휴식을 즐기기 위해 책 한 권을 들고 카페에 모인다. '산책'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정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2시간 동안 조용히 각자 가지고 온 책만 읽고 간다. 상업 공간임에도 최소한의 시간과 공간을 활용하여 이미 다양한 활동을 지향하는 동네의 거점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운영자, 방문자들의 역할이 가장 크다.
거점 공간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활동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지점’을 말한다. 즉 사람의 활동을 위한 공간이다. 그간에 거점 공간이라고 하면 주민센터나 보건소처럼 공공기관에서 조성한 건축물이나 공원 같은 공공환경에 국한하고 기능적으로만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민간에서 운영하는 작은 거점 공간은 크기는 작지만, 활동과 경쟁력을 높이는 장소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더불어 취향과 프로그램에 따라 시간대와 기능을 초월하는 공간으로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다. 결국 거점 공간일지라도 공공과 민간의 활동력에는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여전히 공공건축물은 기능적으로 공간을 분류하고 한정된 시간 안에 프로그램을 운영함에 따라 이러한 민간 운영자들의 활동력을 연결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공 거점과 민간 중심의 거점 공간 간의 네트워크 구축이 더욱 필요하다. 그 효과는 이미 입증된 사례가 있다.
그 사례가 바로 지역 공공도서관과 동네서점이 공모한 ‘찾아가는 동네 책방 북 토크 프로그램’이다. 저녁 시간대 동네서점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공도서관에서 모집 및 행정적 지원을 해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지역 공공도서관은 지역민들에게 밀접하게 관계 맺기가 가능하고 동네서점을 기반으로 시간과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이다. 이처럼 공공과 민간 거점 공간 간의 협업이 이루어진다면 기능과 시간의 자유로움과 더불어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거점 시설과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기록하는 정보매체가 있었으면 한다. 우리 동네에서 발견된 장소, 키워드 프로그램과 운영시간 등이 온라인 정보가 아닌 현장에서 찾은 활동 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면 한다. 이렇게 사람과 프로그램까지 연결하다 보면 민간과 공공의 거점 공간은 공간과 공간,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