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물의 경전
오정환(1947~2018)
한 잔의 차가운 물
단순한 목축임만일까
푸르른 하늘 뜻을 따르는
저 순천한 강물도, 바다도
끊임없이 소리쳐 외쳐대는 폭포도
창문에 쏟아지는 소나기도
비 그친 후 한 방울씩 듣는
낙숫물 소리에도
해독할 수 없지만
경건한 독경소리 스며있는 건 아닐까
바람에 일렁이며 햇살 받아 반짝이는
저 황금빛 그림 글씨
심오한 깨우침의 경전 아닐까
-시집 〈물의 경전〉(2018) 중에서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 때쯤은 언제일까? 물같이 고요하고 담백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는 얼마쯤의 정신적 수양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저 순천한 강물’이나 ‘소나기 낙숫물’ 속에서 ‘경건한 독경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경지는 어느 정도일까? 그리워라, ‘바람에 일렁이며 햇살 받아 반짝이는 저 황금빛 그림 글씨’. 언제나 마음의 갈증을 풀어주고 ‘심오한 깨우침’을 주는 저 ‘물의 경전’!
오정환 시인은 시로 이런 마음을 풀어내고 있다. 그때 시는 마음을 닦는 도량 같은 것. 공자도 시를 두고 천지지심(天地之心)이라 했다. 시심(詩心)이 도심(道心)이 되는 셈이다. 도를 말할 때 ‘물’의 형상이 중요하다. 일찍이 노자가 도의 형상을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여 물의 속성에 빗대었다. 시인은 이를 시 속의 이미지로, 더 나아가 시를 쓰는 행위로 구현하고 있다. 부산이 낳은 물의 시인의 마음이 윤슬 같은 이미지로 반짝이고 있다.
김경복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