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아닌 음식' 초가공식품의 위험, 이 정도였다고?
[초가공식품의 건강 영향]
BMI 상위 15% 8~17세 연구
섭취 많을수록 지방간 1.75배
인슐린 저항성 위험 배 이상 ↑
합성 물질·첨가물 포함 식품
32개 질환·사망 위험과 연관
"생소한 성분 꼼꼼히 따져야"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음식은 알아도 '초가공식품'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인이 이미 하루 섭취 열량의 평균 4분의 1 이상을 초가공식품에서 얻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초가공식품이란 보존성, 맛, 편의성 등을 위해 산업적인 공정을 거쳐서 식품에서 특정 성분으로 추출되거나 합성된 물질이나 첨가물을 포함한 식품을 말한다. 가공 과정에서 당, 가공지방, 염분 등이 많이 들어가고, 비타민, 섬유소 등 영양소는 부족한 것으로 알려진다.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국내외 여러 연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비만 아동·청소년의 대사 이상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은 최근 국제학술지 '뉴트리언츠'에 비만 아동·청소년이 초가공식품을 많이 먹을수록 지방간과 같은 대사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국립보건연구원 내분비·신장질환연구과는 체질량지수(BMI)가 상위 15%에 속하는 과체중 이상의 8~17세 149명을 대상으로 초가공식품 섭취와 대사 이상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대상 아동·청소년들은 하루 섭취 식품량의 20.4%, 하루 섭취 에너지의 25.6%를 초가공식품으로 섭취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을 3개 그룹으로 분류했을 때 가장 높은 그룹에서는 이 수치가 각각 38.0%, 44.8%까지 치솟았다.
분석 결과 초가공식품 섭취 수준이 가장 높은 그룹은 가장 낮은 그룹에 비해 지방간 위험이 1.75배, 인슐린 저항성 위험은 2.44배 높았다. 특히 간지방이 10% 이상인 중등도 이상의 지방간 위험은 4.19배 높게 나타났다.
지방간질환은 비만, 혈당장애, 높은 혈압, 높은 중성지방, 낮은 HDL 콜레스테롤 등 대사증후군 위험인자 5개 중 1개 이상을 가진 지방간 환자를 말한다. 인슐린 저항성은 혈당 조절이 원활하지 못해 혈액에 인슐린이 과도하게 증가하는 상태로, 제2형 당뇨병, 대사증후군 등과 연관이 있다.
대상자들이 섭취하는 식품 중 초가공식품 비율이 10% 증가하면 중등도 이상의 지방간질환 위험은 1.37배, 인슐린 저항성 위험은 1.3배 증가하는 것도 확인됐다.
질병관리청은 초가공식품 섭취가 비만 아동·청소년에서도 대사 이상 위험도를 높인다는 것을 국내 처음으로 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초가공식품 소비를 줄이는 것은 소아의 지방간질환과 인슐린 저항성의 유병률과 중증도를 낮추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 원장은 "비만 아동·청소년의 대사질환 유병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초가공식품의 섭취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아동·청소년의 초가공식품 섭취 감소를 위한 가정, 보육·교육시설 등의 문제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혈관 질환부터 정신건강까지
초가공식품의 기준은 브라질 상파울루대가 개발한 NOVA 분류 체계를 따른다. 이 체계는 가공 정도와 목적에 따라 식품을 비가공·최소가공 식품, 가공된 요리재료, 가공식품, 초가공식품으로 나눈다. 1군은 곡류, 육류, 채소, 과일, 어패류, 버섯류, 씨앗과 견과류, 알, 우유 등 그 자체로 섭취하거나 건조, 분쇄 등 최소로 가공하는 식품이다. 1군 식품을 조리하거나 압착, 정제, 추출 등을 통해 얻는 2군에는 유지류, 설탕, 소금, 꿀 등이 포함된다. 1군에 2군을 더해 보존성을 높이거나 무알코올 발효를 이용해 만든 포장되지 않은 빵, 치즈 등은 3군 가공식품이다.
4군 초가공식품은 음료, 즉석식품,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식품, 스낵류 등이다. 음료에는 탄산음료뿐 아니라 에너지 음료나 제로 슈거 음료, 가당 주스도 해당된다. 각종 소스, 레토르트 식품, 육류 가공식품이나 가당 시리얼 등도 마찬가지다.
최근 출간된 <초가공식품,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는 '부엌에 구비되어 있지 않은 성분의 존재'가 초가공식품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안정제, 유화제, 검, 레시틴, 포도당 등 성분 목록이 나와 있고, 그중 모르는 성분이 있다면 초가공식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초가공식품 섭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인의 일일 섭취 열량 중 초가공식품의 비중은 2010~2012년 23.1%에서 2016~2018년 26.1%로 증가했다. 이탈리아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이 비중은 △호주 42% △미국 58% △이탈리아 10% 등으로 나타났다.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의 '종합판'은 올해 2월 영국의학저널(BMJ)에 발표됐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 프랑스 소르본대 등 국제연구진이 최근 3년 동안 총 100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45개 관련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다.
검토 결과 초가공식품은 모두 32가지 질환 및 사망 위험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많을수록 심혈관 질환 관련 사망 위험은 최대 50%, 불안 및 정신건강 장애 위험은 최대 48~53%, 제2형 당뇨병 위험은 12% 높아졌다.
NOVA 체계를 만든 상파울루대 카를루스 몬테이로 교수는 "초가공식품은 값싼 성분들을 화학적으로 조작하고 향료와 색소, 유화제 등 첨가물을 조합해 맛과 매력을 더한 것"이라며 "유엔 기구들이 회원국들과 함께 담배에 관한 것과 비슷한 협약을 만들어 시행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