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플라스틱 종식 부산선언?
11월 25일부터 벡스코서 국제회의
플라스틱 생산 감축 합의 도출 주목
정부 정책 수립·산업 대전환 나서야
플라스틱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리고 위험한 발명품이다. 기적의 소재로 불리며 우리의 일상과 산업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왔지만 이제는 악마의 물질로 취급받으며 지탄의 대상으로 변했다. 플라스틱 남용에 따른 환경오염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전 지구적 문제가 됐다. 마침 25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유엔 플라스틱 국제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열린다.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만들기 위한 자리인데 이번 부산 회의가 마지막 정부 간 협상이어서 어떤 결론에 이를지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기적의 소재에서 악마의 물질로
플라스틱의 역사는 당구공에서 시작됐다. 1863년 뉴욕타임스에 당구공을 만들 물질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상금 1만 달러를 주겠다는 광고가 실렸다. 당시 당구공은 코끼리 상아로 만들었는데 당구 인기가 높아지자 무분별한 밀렵으로 코끼리 개체 수까지 줄어들고 당구공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것이다. 당시 미국 발명가이자 인쇄기술자 존 하이엇이 천연 합성수지 플라스틱 셀룰로이드를 이용한 당구공을 만들었다. 물론 너무 잘 깨져 상용화까지 가지는 못했다.
이후 1907년 미국 화학자 베이클랜드가 페놀과 폼알데하이드를 이용해 ‘베이클라이트’라는 물질을 만들었는데 이게 인공 플라스틱의 시초다. 플라스틱은 결합력 강한 탄소를 여러 형태로 결합해 만든다. 오늘날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석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이용해 생산하는데 에틸렌이나 프로필렌 같은 기초 원료를 만들고 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탄소의 강한 결합력은 플라스틱이 쉽게 변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쉽게 분해되지 않고 썩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플라스틱 남용은 지구와 생명체를 병들게 하는 환경오염의 대명사가 됐다. 또 제조와 폐기 과정의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변화의 주범으로까지 부상했다.
∎2060년이면 연간 생산량 12억 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연간 생산량은 2020년 4억 3500만 톤이었는데 2040년이면 7억 3000만 톤, 2060년에는 12억 3000만 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폐기량은 2020년 3억 6000만 톤에서 2040년 6억 1000만 톤으로 늘어난다. 반면 재활용률은 6%대에 불과하다. 바다와 강으로 흘러드는 플라스틱이 2040년이면 30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플라스틱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은 전체의 3.8%지만 2050년이면 15%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코스타리카 해변에서 코에 빨대가 박힌 채 발견된 바다거북이, 뱃속에 플라스틱을 가득 삼킨 채 죽은 펠리컨, 생수병 뚜껑 고리에 입이 걸린 거북이는 플라스틱 환경오염을 고발하는 상징적 장면이 됐다. 태평양 심해에서부터 에베레스트 정상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플라스틱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다고 한다.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으로 매년 바닷새 100만 마리와 해양 포유동물 10만 마리가 죽어 간다. 해양생물에 축적되고 대기에 부유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결국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
∎강제력 있는 감축안 도출할 수 있나
세계 175개국 대표들은 2022년 3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P)에서 급증하는 플라스틱 오염을 규제하기 위한 국제협약을 2024년까지 마련하기로 결의했다. 글로벌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최대 친환경 합의(그린 딜)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따라 구체적 협약안을 만들기 위한 정부 간 협상위원회 회의가 네 차례 진행됐고 부산에서 마지막 5차 회의가 열리는 것이다. 플라스틱 생산 규제, 우려 화학물질 규제, 문제성 플라스틱 규제 등이 쟁점인데 결국 정부 간 합의를 통해 강제적 플라스틱 감축 목표를 정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네 차례 회의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입장 차가 여전히 커 합의에 이르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플라스틱 생산 단계부터 감축해야 한다는 강성 그룹인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야심 찬 목표 연합(HAC)’과 재활용·폐기물 관리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약성 그룹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이 대립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아프리카 도서국 등이 HAC에 속해 있고 러시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생산국과 산유국을 주축으로 GCPS를 이룬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의 정책 변화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환경단체들은 부산 회의를 앞두고 플라스틱 생산과 사용, 폐기 등 전 주기에 걸친 감축 목표와 구체적 로드맵을 설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 중요
국가 간 논란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큰 틀의 시대적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플라스틱 산업과 사용 비중이 높은 우리로서는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4위 에틸렌 생산국이고 석유화학이 국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주요 수출국이기도 하다. 친환경 플라스틱 연구개발, 고부가가치화 등 산업적 측면에서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의 플라스틱 정책에 대한 중장기적 로드맵 수립과 일관되고 지속적인 추진이 중요하다. 정부가 플라스틱 빨대를 금지하고 종이 빨대로 전환했다 다시 빨대 등 1회용품 규제 의무를 해제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과정에서 산업계와 자영업자, 소비자들이 겪었던 혼란을 다 기억할 것이다. 정부는 정부 간 플라스틱 협상 과정에서도 당초 플라스틱 생산 감축안에 부정적이거나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최근 부산 회의를 앞두고 감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부산 회의를 계기로 플라스틱에 대한 전향적 정책 전환과 산업 혁신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