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당신의 관계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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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존재는 우주 속 관계의 산물
영속적 상호작용이 곧 정체성
개인·사회 병폐도 소통 부재 탓

당신을 당신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름, 생김새, 성격, 학력, 기술, 재력 등 당신이 가진 수많은 특징들을 나열할 수는 있겠지만, 이 우주에서 당신만을 특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예전에는 작은 공동체 마을에서의 쓰임새(직업), 누군가의 아들, 출신 지역 등으로 특정했었다면, 요즘엔 이른바 ‘아이디’라는 게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민등록번호인데, 당신의 시공간의 유래를 담고 있다. 생년월일과 성별, 출신지역, 가족관계 등 호적상 기록을 숫자로 특정한 것이다. 일종의 고유한 양자수(Quantum Number)인 셈이다. 양자수란 물질의 특정 양자상태를 나타낸다. 우리 각자는 아주 복잡하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특정 양자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당신이 존재하는 시공간과 유래, 즉 관계가 당신의 존재를 특정한다.

당신이 너무 고독한 상황에서 “우주에는 오로지 나뿐이며 다른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아무리 소리치더라도, 당신이란 존재는 스스로가 아니라 당신이 유래한 관계로만 특정된다. 바로 당신은 우주를 관통하는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굳이 진화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어느 누구도 아무 관계도 거치지 않고 그냥 뚝 떨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종교가 ‘창조’와 ‘처녀 잉태’에 집착하는 아주 중요한 이유다.

모든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우주의 최초가 있다. 엄청난 에너지가 물질과 반물질로 바뀌던 빅뱅의 순간부터 시작됐다. 여기서 관계라는 것은 단순히 유래했다는 인연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작용(action)과 반작용(reaction)을 통해 상호작용(interaction)이라는 실질적인 소통관계를 뜻한다.

에너지·물질 등가원리(E=mc2)에 의해 생성된 물질과 반물질 점입자(기본입자) 쌍들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운동하며 퍼진다. 무거운 입자들은 약한 상호작용(약력)에 의해 가벼운 점입자들로 붕괴하는 동시에, 색전하를 갖고 있던 점입자(쿼크)들은 강한 상호작용(강력)에 의해 뭉쳐지면서 100만 분의 1초도 안 되는 동안에 오늘날 원소들의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와 같은 강입자들 안에 속박된다.

초기우주가 식어가면서 색전하를 갖고 있던 쿼크들은 결코 더 이상 따로 존재할 수 없다. 필연적인 관계가 이들을 양성자와 중성자안에 가둔 채 엄청난 속도로 강한 핵력이라는 소통을 지속시킨다. 그래서 이 쿼크들은 분리될 수 없다. 소통은 이들의 존재 근거이며, 변할 수는 있어도 없어지진 않는다. 이후 핵 안의 양성자 수만큼의 전자들이 결합하여 중성 원자들이 형성된다. 또다시 원자들은 전자들을 공유하면서 분자 먼지들이 되고, 마침내 중력(만유인력)을 통해 더 큰 덩어리로, 불덩어리로 진화해 별과 행성들이 조화롭게 운행하는 오늘날의 우주가 만들어졌다.

그때 그렇게 생긴 입자들 중에서 하필 지구라는 행성에 붙들린 입자들이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다. 우주 탄생 이래 새롭게 생기거나 없어진 것들은 없다. 단지 여러 가지 형태로 합쳐지고 분해되는 상호적인 소통관계를 통하여 피고 지는 것이 삼라만상이다. 각 입자들의 질량과 전하 등 고유의 성질에 따라 운동의 양상은 밀고 당기는 등 달라지지만, 모든 것들의 영속적인 상호작용이 우주의 정체성이다.

우리가 아무리 혼자만의 골방에 갇혀있다고 해도 부지불식간에 매 순간 한 움큼씩의 숨을 내뱉고 들이마시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 그 한 움큼의 공기 안에 유구한 시간 동안 다른 어떤 삼라만상의 내부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은 그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는 싫으나 좋으나 한 공간에서 같은 행성에서 동일한 공간과 시간을 숨 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우리는 상호적인 소통작용을 멈출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아픈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소통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입맛에 맞는 것으로만 둘러싸인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된 채,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일방적인 판단을 일반화하고 확신을 굳혀간다. 상호적이 아니다. 선택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해도 대단히 제한적이어서, 일방적으로 시작하고 일방적으로 끝난다. 그래서 이것은 실존하는 소통이 아니라 가짜 소통이다. 관계의 단절이다.

우리의 존재가 위협받는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을까. 상호적이어야 할 관계가 일방적이거나 고립적이 된 원인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자존감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권위적 체제 내에서 억압받아 강요가 내재된 순종이, 최근의 탈권위 시대에 도전과 반항으로 제각기 정반대 방향으로 도망쳐버린 상태. 오로지 돈과 권력, 상대적인 우위로 줄 세우는 사회가 자초한 것이다. 과연 우리들의 관계는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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