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사는 곳이 대입을 좌우하는 나라
이현우 콘텐츠랩본부장
서울 학생들이 상위권대 점령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 어긋나
서울 출신 진학 비중 늘고
광역시 등 지방 출신 대폭 감소
지역별 비례선발제 대안 급부상
지역 중심 공론화 물결 파장
서울 학생들이 서울 명문대에 훨씬 많이 간다. 부산 사는 학생들은 가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단순하게 인구 비율만으로 따져 봐도 뭔가 이상하다. 2018년 기준 국내 일반고 졸업생 가운데 서울 출신은 16%에 그친다. 그런데 당시 서울대 진학생 가운데 서울 출신 학생 비율은 32%나 된다. 강남은 더하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출신 학생은 국내 4%밖에 안 된다. 그러나 서울대 진학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자그마치 12%에 달한다.
서울 살면 서울대 가기가 훨씬 쉽고 지방에 살면 그렇지 못하다. 예전엔 꼭 그렇지는 않았다는 게 문제다. 1980년대 부산의 주요 고교들은 한 해 서울대에만 수십 명씩 보내며 진학 성과를 놓고 경쟁했다. 많게는 한 학교에서만 한 해 40~60명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지금 부산엔 서울대에 한 명도 못 보내는 고교가 수두룩하다. 서울과 비교하면 지역 특목고들의 진학 성과도 영 뒤처진다. 지방 학생은 갈수록 서울대에 가기 어려워진다는, 서울 학생이 더 많이 서울대에 간다는 막연한 현실 인식은 통계로도 정확히 입증된다. 서울대에 진학한 고3 학생 비중은 서울이 2000년 0.90%에서 2018년 1.30%로 0.4%포인트(P) 증가했다. 그 사이 지방광역시는 0.73%에서 0.46%로 0.27%P 떨어졌다.
상위권대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해 파장을 일으킨 한국은행의 지난 8월 보고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37쪽짜리 보고서는 ‘참담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가난하지만 잠재력이 높은 지방 학생보다 평범하지만 부유한 서울 학생이 좋은 대학에 입학할 기회를 더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한 보고서는 이렇게 결론 맺는다. 학생의 수학 성적 등으로 판별한 ‘잠재력’보다 ‘사는 지역’이 대학 진학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부산에 사는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서울 사는 공부 좀 덜 잘하는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말이다. 보고서는 학생의 △잠재력(학업 능력 또는 지능) △부모 경제력 △거주 지역 등의 요소를 비교해 상위권대 진학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했다. 분석 결과 학생 잠재력보다는 거주 지역과 부모 경제력이 진학 결과에 훨씬 더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다. 서울과 비서울 지역 서울대 진학률을 비교했을 때 서울과 비서울 격차에 미치는 영향은 ‘거주 지역 효과’가 92%, 학생 잠재력 차이는 8%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학생 잠재력과 부모 경제력을 분석한 연구에선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에 경제력 효과가 75%, 잠재력 차이는 25% 기여하는 것으로 유추됐다.
학생이 사는 지역과 부모 경제력은 결국 ‘우수한 사교육 환경’으로 모아진다. 서울, 더 좁혀서 강남의 월등한 사교육 환경과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입시 성과로 직결된다는 뜻이다. 결국은 ‘강남 사교육’이 우리나라 대학 입시의 가장 강력한 변수라는 분석이다. 자녀를 우수한 대학에 보내기 위해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서울 입성이다.
보고서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상위권대 지역별 비례선발제는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따라 신입생을 선발하는 모델이다. 이럴 경우 학생 수준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국회의원이 최근 서울대에서 받은 자료를 봐도 그렇다. 지난 2월 서울대 학부를 졸업한 학생 가운데 지역균형전형 출신의 평균 졸업 학점은 3.67점(4.3점 만점)으로 서울대 학부 졸업생 전체 평균 학점인 3.61점보다 0.06점 높다.
국민의힘 박수영(부산 남구) 국회의원이 최근 지역별 비례선발제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난해 서울대 입학생 수를 조정한 결과를 보면 효과가 체감된다. 서울은 1306명이던 입학생이 603명으로 줄어 703명이나 감소한다. 부산은 147명에서 206명으로 서울대 입학생이 59명 늘어나게 된다. 울산은 50→87명(37명 증가), 경남 133→248명(115명 증가), 대구 173→176명(3명 증가)으로 조정된다. 반면 서울과 함께 대전(22명 감소), 세종(37명 감소)만이 줄고 나머지 지방은 모두 입학생이 증가한다. 박 의원은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망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 지역별 비례선발제 공론화에 앞장서겠다고 한다. 한은 보고서는 하버드대 정치학과 앨런 교수를 인용하면서 비례선발제 제안을 마무리한다. ‘앨런은 대학 내 지역적 다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인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점을 언급했다…대학이 인재를 선별하기 위해서는 학생이 성장한 환경을 고려해 학문적 재능 등을 평가해야 하며 출신 지역은 이러한 환경을 반영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역설하였다.’ 대한민국의 절반인 지방이 지역별 비례선발제 공론화의 목소리를 얼마나 크게 모아 나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