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무엇을 얻고 잃었나
논설위원
전문가 “1950년 이후 가장 위험”
한반도 전쟁 가능성 점점 짙어져
남북 우크라전 대리 우려도 커져
신냉전 최전선에 내몰리는 형국
‘힘에 의한 평화’ 주창하기보다
국민 안전에 최우선 가치 둬야
미국에 스팀슨센터라는 연구기관이 있다. 북한 문제 등 국제 관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다. 이곳의 선임연구원 로버트 매닝 박사가 지난달 초 “한반도는 1950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올해 1월에는 미국 미즐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이 같은 말을 했다. 이들은 지금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설마…, 하면서도 공포가 엄습하는 걸 어쩔 수 없다. 근래 돌아가는 꼴이 그리 만든다.
북한은 이미 남한을 타국이자 적국으로 규정했다. 경의선과 동해선의 북측 구간 도로·철도 폭파는 상징적이다. 동족 간 화해와 협력의 상징을 무참히 걷어냈기 때문이다. 이러다 비무장지대가 중무장지대가 될 판이다. 북한이 보낸 오물 풍선이 대통령실 앞마당에 ‘정확히’ 떨어지고 ‘남한이 침범했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날아다니는 현실은 또 어떤가. 남북 지도자의 말에는 살기가 서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일 “북한 정권 종말” 운운했고, 바로 다음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공격력을 동원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불난 데 기름 부은 격이다. 당장에 나토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그리 되면 기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전 양상으로 비화된다. 안 그래도 국제질서가 신냉전 구도로 급변하는 형국이다. 70여 년 전 냉전의 시기 우리 민족은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한반도가 또다시 냉전의 최전선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알려지자마자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국군의 파병까지 거론되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군사적 개입이 현실화되면, 남북은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상황을 맞게 되고, 종국에는 한반도에까지 전운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이는 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정치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부자는 무기를 대고,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제공한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인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하고, 부자는 생필품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은 자식의 무덤을 찾는다.’ 1990년대 내내 전쟁을 치른 세르비아에서 속담처럼 떠도는 말이라고 한다. 실상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 몫이다. 현 상황에 우리 국민은 불안하고 두렵다. 자식을 군대에 보냈거나 보내야 하는 부모들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대신 위기감을 부추긴다. 현직 국가안보실장과 국회 국방위 소속 여당 의원이 최근 나눈 문자 대화가 논란이다. ‘우크라이나와 협조해 북괴군 부대를 폭격하고, 이 자료를 심리전에 쓰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러시아와 북한을 상대로 당장 전쟁이라도 벌일 기세다. 어쩌면 현 정부의 안보 담당자들은 실제로 전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긴장과 대결을 불사하려는 듯한 흐름이 느껴진다”고 했다. 살상무기 지원 등에 대해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가 있었고 국방장관 회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관련 논의가 이미 상당히 진행됐을 수도 있다.
〈손자병법〉은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전쟁은 국가 대사이며, 생사의 바탕이자 존망의 길이니,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병법서의 첫머리가 이러할진대, 국정 책임자라면 필사의 노력으로 전쟁을 피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 이유에서 새삼 요구되는 게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변화다.
윤 대통령은 화해와 협력이 아니라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해 왔다. 그 결과 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가 됐다. 한반도 비핵화는 요원해졌고, 북의 핵능력은 더 빠르게 고도화됐다. 한미일 공조에 몰두하면서 중국, 러시아와 멀어졌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과 동맹을 복원한 데 이어 북한의 파병을 계기로 혈맹이 되려 한다. 남한은 러시아까지 적으로 둬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한미일 공조는 필연적이라 해도, 그것이 중국, 러시아 등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전략과 전술은 유연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병법에도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고 하지 않았나. 먼 세력과는 친하게 지내고 가까운 세력을 공격해야 경쟁에서 이기는 법이다.
이제 윤석열 정부의 기존 외교·안보 정책으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냉철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한반도에 평화를 촉진하는 일 역시 내칠 수 없는 목표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국토를 보전하고 국민을 지키는 데 궁극의 가치가 있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