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카르멘과 돈 호세, 오페라가 만든 불멸의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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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조르제 비제. 위키미디어 제공 조르제 비제. 위키미디어 제공

남자의 심장을 겨눈 여인들이 있다. 역사의 시련 때문이거나, 타고난 미모 때문이거나, 자유로운 영혼 때문이거나, 아무튼 이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험에 빠트린다. 이른바 팜므 파탈이라는 ‘치명적인 여인’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데아, 구약성서에 나오는 델릴라와 살로메 같은 여인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신화나 성서의 인물이 아닌,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태어난 나쁜 여인의 전형은 비제의 ‘카르멘’에서 시작되었다.

10월 25일은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1838~1875)가 태어난 날이다. 비제는 1875년 파리 오페라코미크극장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여주인공을 선보였다. 그녀가 나타나기 이전까지 오페라 무대를 장식한 여주인공은 대부분 청순가련형의 여인이었다. 남자 때문에 슬퍼하며 울고 방황하다 실의에 빠져 죽어가곤 했다. 그런데 카르멘은 달랐다. 그녀는 신화 속에서 온 것도 아니고 성경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공주나 귀부인도 아니었고, 이상과 야심에 불타는 사람도 아니었다. 유럽의 오지나 다름없는 스페인의 남쪽 끝 안달루시아 지방, 거기서도 이방인이자 최하층 집단인 집시 여인이었다.

카르멘은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죽겠다”라고 노래하면서 기존의 가치관을 뒤집어놓는다. 이때부터 오페라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예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게 된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역할에서 벗어나서 남자를 쥐락펴락하다 못해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비제 '카르멘' 중 꽃노래. 비제 '카르멘' 중 꽃노래.

자, 여기에 카르멘을 도와주다가 감옥신세를 지고 풀려난 남자 돈 호세가 있다. 그는 카르멘을 찾아와 간직해 두었던 꽃을 꺼내 보인다. 그 꽃은 1막에서 카르멘이 자신을 유혹하면서 던진 꽃이다.

“당신이 내게 던져준 꽃을 감옥에서도 간직하고 있었소… 당신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내 운명이 왜 당신과 나를 만나게 했는지 묻기도 했소. 그러나 당신을 욕한 걸 후회했소. 내 유일한 욕망, 유일한 희망은 당신을 다시 본다는 것이었소. 오, 카르멘, 그렇소, 당신을 다시 보리라는 희망 말이요. 오, 나의 카르멘, 나는 당신 것이오, 카르멘, 당신을 사랑하오!”

멀쩡하던 남자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지질하고 구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게 사랑이다. 사랑은 원래 맨정신으로 하는 게 아니다. 당시의 프랑스 청중은 너무나 이질적인 캐릭터와 스토리에 당황했고 불쾌해했다. 결국, 오페라는 3개월 만에 막을 내렸고, 그 충격 때문에 건강이 나빠진 비제는 초연한 지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비제가 죽자마자 카르멘의 인기는 치솟기 시작했고, 이후 수많은 ‘치명적인 여인’의 원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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