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정의는 즐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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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공동연구원

남 앞에서 옳은 말을 한창 떠들고 나면, 내 일상의 검박한 불행이 훅 낯설어질 때가 있다. 정의로운 말과 설명은 필요하지만, 그게 사람을 행복으로 이끄는 일은 드물다. 부디 지금보다 옳은 존재에게 사랑받고 싶어 감행하는 일들이지만, 그 사랑은 늦어도 너무 늦게 돌아 돌아 나에게 도달한다. 그 전까지 옳은 말들에 소요되는 마음의 힘이 크고 무겁기 때문에, 그걸 행복하지 않은 채로 오래 감당하는 일의 어려움을 생각한다.

입에 단 음식이 몸에도 좋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세상에 그런 일은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말과 행동이 즐겁기까지 하면 참으로 좋겠지만, 그런 일은 세상에 아 드물게 존재한다. 남을 생각하고 그 남을 고려해 정의로워지는 일은 대체로 즐겁지 않고, 십중팔구 지금보다 좀더 불행해지는 일이다. 그 불행이 버겁기 때문에 사람들은 때로 뭐가 정의로운지 알면서도 그것을 외면한다. 정의란 그 외면의 속내를 알고서 그것을 떠드는 일에 가깝고, 그래서 힘이 든다.

정의를 말하려던 사람은, 때로 내가 겪은 이 모든 걸 그저 남에게, 또는 새 시대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적멸의 세계로 조용히 사라지게 하고픈 욕망에 휩싸인다. 정의로 인해 남과 나를 둘러싼 이 세계가 바뀌었으면 하는 기대는, 그저 이 세계가 지속되어도 좋다는 관성 앞에 종종 연약하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 알기 때문에, 어떤 말들은 그 폐문의 욕망을 뚫고 비로소 어렵게 발화된다. 내가 겪은 일이 그저 즐겁고, 그걸 떠드는 일이 그저 즐거운 처지에서는 나오기 힘든 응축이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한 것이 갖는 긴장이 있다. 그 긴장을 뚫고 무언가를 말하는 힘은, 거기에 누가 함께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일에서 나온다. 내가 보고 겪은 걸 마음으로 따르는 일은 버겁지만, 반대로 그것을 외면하는 일은 마음에 부채가 되어 쌓인다. 마치 생전에 알던 어떤 이의 부고를 듣고 그것을 외면한 기억처럼.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노고를 모르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경사는 몰라도 조사는 챙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고인의 빈소를 찾는다. 그곳에는 생전 고인과 관계를 맺은, 행복하지 않은 표정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행복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도리를 다하고 사는 일을 생각한다. 행복하지 않은 눈으로 동료의 빈소를 들르고 모종의 이유로 빈소를 꾸리지 않은 동료의 장지를 따라가고, 행복하지 않은 손으로 추모제를 기획하고, 행복하지 않은 펜으로 그를 기리는 글을 쓴다. 기운이 나지 않는 채로 기운을 내어 눈앞의 일을 치르는 것이 세상살이의 반절이다. 행복하지 않은 우리는 거기에 그렇게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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