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영의 법의 창] 무책임한 국회의 직무 유기, 무엇이 중한가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의 이례적인 한 결정을 두고, ‘아쉽다’ ‘환영한다’는 여야 대변인의 다른 논평이 있었다. 헌법재판소 ‘10월 공백설’ ‘기능 마비설’의 우려가 현실화하기 바로 직전의 결정이었다. 헌법재판소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운영되는데, 그중 10월 17일 퇴임을 앞두었던 3인 재판관의 후임 재판관 인선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합의체 결정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 사건의 심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법상 재판관 7인 이상의 참석을 필요로 한다. 그 때문에 재판관 2인 이상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심리 정족수 미달로 헌법재판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3인 재판관의 퇴임으로 6인만이 남은 헌법재판소가 심판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될 상황이 문제였던 것이다.
헌재 재판관 인선 지연 국민 권리 침해
정치 셈법으로 좌지우지할 사안 아냐
헌법 제도 무용지물 엄중히 책임 물어야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소법 심리 정족수 규정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 결정이라는 미봉책을 통해 일단은 응급 상황을 모면했다. 14일의 결정으로 6인의 재판관만으로 심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후임 재판관 선출 지연으로 헌법재판 공백이 발생한 사례는 이전에도 13번이나 있었다. 그 공백을 만들어 낸 것은 항상 국회였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한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자를 임명한다. 그런데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재판관 선출 방식 규정은 없어서 국회 내에서 결정해 왔고, 늘 그 정치적 과정이 근본적인 문젯거리였다.
국회 선출 3인 재판관 추천 방식은 국회 상황에 따라 달랐다. 1기 재판부는 3당이 1인씩 추천했고, 2기는 여당 2인·야당 1인 추천이었으며, 3~5기는 여당과 야당이 1인씩 추천하고 나머지 1인은 여야 합의로 추천했다. 현재의 6기는 여야가 1인씩 추천하고 원내 3당인 제2야당이 1인을 추천했다. 그런데 22대 국회 상황은 제3당인 조국혁신당이 원내교섭단체가 아니어서 교섭단체별로 1인씩 후보자를 추천하는 방안은 취할 수 없고, 결국 여당과 야당이 1인씩 추천하고 남은 1인을 여야 간 합의로 할 것인지 거대 야당 추천으로 할 것인지 여야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1987년 헌법이 다시 복원해 낸 헌법재판소는 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심판·탄핵심판·정당해산심판·권한쟁의심판을 통해 헌법 보호·기본권 보호·권력 통제 기관으로 헌법 실현의 마지막 보루로서 헌법적 책무를 수행하는 헌법기관이다. 1988년 9월 19일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처리한 헌법재판 사건 수 5만 579건, 그중 무려 2168건의 위헌결정을 내린 통계치가 보여주듯이, 활성화한 헌법재판은 국민 속에 살아 있는 헌법의 의미를 확인하고 선언해 왔다. 재판관 인선 지연으로 인한 공백이 헌정 질서의 위기가 될 수 있는 이유다.
헌법재판소법은 국회의 후임 재판관 선출 시한에 관해 재판관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에는 임기 만료일까지 후임 재판관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선출권은 국회의 권한인 동시에 의무인 것이다. 또한 국회가 퇴임 재판관의 후임 재판관을 법정기간 내에 선출하지 않아서 장기간 재판관 공백 사태를 빚는다면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헌법이 헌법재판소를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한 것은, 다양한 가치관·헌법관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합의체가 헌법재판을 담당함으로써 헌법재판에서 헌법 해석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그 견해 간의 경쟁 기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는 국민의 공정한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을 위해 후임 재판관을 선출해야 할 구체적 작위의무를 부담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은 국회의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무책임한 국회의 직무 유기적 상황!
물론 재판관 공백 발생은 입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헌법위원회를 둔 프랑스는 헌법 위원의 사직을 후임 위원의 임명 시에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된 경우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는 예비재판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헌법재판소 초기부터 이러한 대비책의 필요성과 입법적 해결 도입을 논의해 왔다. 하지만 현재 가장 좋은 방안은 국회의 신속한 재판관 선출 의무 이행이다.
헌법재판관 선출은 여야 간의 정쟁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셈법으로 좌지우지하는 사안이 될 수 없다.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재판부의 심판을 받을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가 정작 국민을 위한 헌법 제도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이 상황을 우리 국민은 엄중히 바라보고 그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