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강의 기적' 그 너머
노벨문학상 수상, 서점·출판계 활기
“유튜브 다음은 책” 작가 말 현실로
문해력 논란 속 더 반가운 독서 열풍
종이책 인기, 신문까지 확대됐으면
“유튜브 다음은 뭐지? 다시 종이책이 아닐까?”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 강연에서 한강 작가가 했던 말이다. 그가 했던 말이 정말 현실이 됐구나 싶을 만큼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매년 독서 인구가 줄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만 듣다가 한강의 책이 없어서 못 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할 정도다.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다. 한편으론 씁쓸한 생각도 든다. 평소 우리 국민이 그의 작품을 포함한 한국 문학과 책을 이만큼 아끼고 사랑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수년 전 영국 여행에서 런던의 서점을 방문했다가 한강 작가의 영어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덜컥 구매해 온 적이 있다.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The White Book(흰)〉이었다. 이 책을 포함해 한강의 책을 여럿 소장하고 있지만, 기자 역시 완독했다 할 수 있는 건 〈채식주의자〉 정도다. 〈소년이 온다〉는 사 놓고도 절반밖에 읽어내지 못했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선물 받은 뒤 몇 달째 펼쳐 보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5·18이나 4·3 같은 현대사의 아픔을 깊이 다루고 있는 그의 작품은 사실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국가적 경사는 온 국민이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우리나라뿐이랴. 해외에서도 한강의 책은 품절 상태로, 한글 책마저 동날 정도라고 한다. 지난 13일 〈부산일보〉와 인터뷰 한 한 20대는 “이번 주말 핫플레이스 방문 대신 한강 작가 책을 읽기로 했다”고 한다. 한동안 시내 카페에선 한강의 책을 읽는 사람을 자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유행처럼 그의 책을 들고 다니는 이들을 거리에서 심심찮게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잖아도 2030세대들에겐 ‘텍스트 힙’이 유행하던 참이다. 텍스트 힙은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Text)’와 ‘멋있는’이라는 뜻의 ‘힙(Hip)’을 합친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 사이에선 인쇄된 활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특별해 보이는 모양이다. SNS에서는 ‘#북스타그램’ 혹은 ‘#책스타그램’ 같은 해시태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책 읽는 사진을 공유하거나 독서 중 발견한 좋은 구절을 찍어 올리는 사람도 많다. 한강 작가의 수상 후엔 그의 대표작을 필사해 공유하는 챌린지도 생겨났다고 한다. 또 독립서점을 방문해 인증하는 등 독서하는 자신의 ‘힙’함을 알리는 방법도 다양하다.
그것이 과시욕이든 지적 허영이든 젊은 세대 사이에서 독서 열풍이 일고 있다는 현상 자체가 긍정적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문해력 논란이 일고 있는 세상 아닌가. 일부에서는 요즘 애들이 책은 안 읽고 유튜브 동영상과 숏폼 콘텐츠만 봐서 문제라고 혀를 끌끌 차지만, 기자는 문해력 논란이 그렇게 단순하게 볼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루한 한자어나 행정 용어가 시대에 맞게 바뀔 필요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된 ‘우천 시’나 ‘중식’ 같은 단어는 ‘비 올 때’나 ‘점심’처럼 자주 쓰는 말로 얼마든지 대체해 쓸 수도 있는 문제다. 같은 의미로 젊은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려면 ‘독서하는 사람이 멋지다’는 말보단 ‘책 읽는 사람이 힙하다’는 말이 당연히 더 효과적일 테다.
작가들이 고르고 골라 썼을 어떤 단어를 책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됐을 때의 즐거움, 그 단어가 갖고 있는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곱씹어 보는 보람 같은 것을 맛본 이라면 책 읽기를 싫어할 수가 없다. 그 과정에서 어휘력도, 문해력도 자연스럽게 키워진다. 출간한 지 26년 된 양귀자의 〈모순〉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등장하는 등 ‘역주행’ 하고 있다는 소식에 뒤늦게 책을 구해 읽다가 기자 역시 그때 그 시절 소설에서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는 한자어 하나를 만났다. 그 단어가 뭐였던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검색창에 미지의 단어를 입력해 그 의미를 알게 됐을 때의 흡족함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불러온 서점가와 출판계의 행복한 비명이 한동안 계속되면 좋겠다. 간만에 불어온 국민적 독서 열풍도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지금 필요한 건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재등장일지도 모른다는 어느 후배의 말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강의 기적’을 이어가고 싶은 오늘이다. 더불어 다시 돌아온 종이책의 인기, 활자 읽기 트렌드가 신문으로까지 번지기를 바라 본다. ‘신문 읽는 사람이 힙하다’고 하는 날도 조만간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자영 사회부 차장 2young@busan.com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