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어민의 눈물, 언제까지 남의 일일까?
김민진 중서부경남본부 차장
“올해가 당신이 경험하는 가장 시원한 여름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자 피터 칼무스가 지난해 SNS를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알린 섬뜩한 경고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한술 더 떠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는 끝났다.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 시대가 도래했다”고 단언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올여름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은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불볕더위에 허덕였다. ‘역대급 폭염’ 기사는 이제 일상이 됐다. 바다는 아예 펄펄 끓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7월 24일 올해 첫 고수온 특보를 발령한 이후 이달 2일 해제했다. 지속 기간은 무려 71일로 2017년 고수온 특보 체계가 만들어진 이후 가장 길었다.
30도를 웃도는 고수온에 어민은 역대 최악의 여름을 보냈다. 해수부 자료를 보면 지난 7월부터 이달 초까지 접수된 양식 어류 폐사 피해 신고 규모는 4850만여 마리다. 이 중 절반이 넘는 2672만 3000여 마리가 경남 앞바다에서 떼죽음했다. 여기에 멍게 4777줄, 미더덕 614줄, 피조개 374ha, 전복 60만 6000여 마리가 고수온에 녹아 내렸다. 현재까지 집계된 피해액은 594억 원 상당으로, 역대 최악이라던 지난해(1466만여 마리, 207억 원) 갑절 수준이다.
특히 멍게는 통영과 거제 앞바다에 있는 양식장 800여ha 대부분이 ‘궤멸 수준’이다. 남해안 멍게는 국내산 멍게 유통량의 70%가량을 차지한다. 통상 여름을 지나면 10~20% 정도 폐사하는데, 올해는 생존율이 10%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굴도 유탄을 맞았다. 굴은 딱딱한 껍데기가 알맹이를 보호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수온 변화에 둔감하다. 올해는 긴 장마로 육지에 있던 각종 영양분이 바다로 다량 유입돼 성장 환경은 더 좋아 작황이 나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일부 해역에서 ‘산소부족물덩어리’(빈산소수괴) 피해로 추정되는 폐사가 일부 확인됐지만 평년보다 심한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딴판이었다. 경남 전체 굴 양식장 3분의 1에 해당하는 1130ha가 직격탄을 맞았다. 평균 폐사율은 60%, 심한 곳은 90%를 웃돈다. 두 달 넘게 이어진 고수온에다 빈산소수괴까지 덮치면서 뒤늦게 폐사를 유발했다는 게 어민들 판단이다.
어선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형기선저인망수협이 내년 감척사업 수요를 조사했더니 소속 어선 136척 중 절반이 넘는 74척이 참여를 희망했다. 2년 전과 작년 수요 조사에선 각각 6척, 15척에 불과했다. 최근 인건비, 유류비 등 고정비용이 치솟아 가뜩이나 경영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고수온 후유증에 생산성마저 곤두박질치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수온 1도 변화는 육상 기온 5도 이상에 맞먹을 만큼 해양 생물에겐 치명적인 충격이다. 올여름 폭염은 올겨울 역대급 한파의 예고편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당장 피해는 어민들이 떠안겠지만 다음은 누가 될지, 또 얼마나 심각할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언제까지 남 일일순 없다는 얘기다. 진정 올여름이 가장 시원하다면 앞으로 마주할 여름은 어떨지 상상하는 것조차 아찔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 하나 정도는 고민해야겠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