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尹 동반자는 ‘교섭단체’ 아닌 ‘정당’이다
박석호 서울정치부 부장
국감 앞둔 만찬에 원내 지도부만 대통령실 초청
정당 아닌 ‘교섭단체’만 우군으로 생각하는 듯
한 대표와 갈등하더라도 지지층 열망 모으고
의원뿐 아니라 모든 당원 챙기는 모습 보여야
정당은 정치적으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인 결사체로 정권을 잡는 것이 지상목표이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입법부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해야 정국을 주도할 수 있고, 집권에 유리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정당의 실질적인 힘과 비례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요즘 국회에서 무소불위의 입법권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정당의 본질을 국회의원으로 동일시하는 인식이 강하고, 실제로 국회법·정당법·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에서는 국회의원 숫자를 기준으로 수많은 인센티브를 준다. 정당에 주어지는 국고보조금 규모는 소속 국회의원 의석수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다.
공직선거에서 후보자의 기호도 국회의원 의석순으로 매겨진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의 지지율이 아무리 높아도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국회의원 숫자가 적으면 기호는 뒤로 밀린다. 국회법 상의 교섭단체(우리나라의 경우 20명 이상)가 되면, 국고보조금을 비롯해 정책연구위원·입법지원비 등을 받을 수 있다. 상임위원장 배분에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상임위에 간사를 둘 수 있어 쟁점법안을 다룰 때 강한 교섭권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정당이 꼭 국회의원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배지를 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국의 지역구를 책임지는 원외 위원장이 있고, 그 주변에서 책임당원(또는 권리당원)들이 주력부대를 형성한다. 또 수백만 명의 일반 당원(더불어민주당 480만 명, 국민의힘 410만 명)이 모세혈관처럼 여론을 형성하고 각종 선거에서 표를 이끌어낸다.
정당의 중요한 동력이 국회의원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집권할 수 없는 이유다. 역대 대선에서 소수정당이 승리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는 1996년 총선에서 불과 79석을 얻는데 그쳤으나, 이듬해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정권 교체를 이뤘다.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은 원내 제2당이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했고, 2022년에는 국민의힘 원내 의석이 100석을 겨우 넘겼지만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여당의 원내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부대표단과 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 및 간사들이 대상이었다. 한동훈 대표는 빠졌다. 왜 그랬는지는 정치 문외한이라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날 원내 지도부 만찬에서는 지난달 24일 당 지도부 초청만찬 때보다 훨씬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당 지도부 만찬 때는 한 대표를 비롯해 아무도 인사말을 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추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국회 상임위원장들이 돌아가며 발언했다. 한 대표와의 만찬은 1시간 30분 만에 끝났지만, 원내지도부 만찬은 2시간 15분으로 45분이나 더 길었다.
이날 만찬은 추 원내대표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의원들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대통령실에 제안해 이뤄졌다고 한다. 원내지도부를 만나 고무된 윤 대통령은 “우리는 숫자는 적지만 일당백의 각오로 임하자”고 독려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일당백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일반 당원들은 물론 수많은 지지층의 힘이 더해져야 한다. 단순히 여당 국회의원들만으로 거대 야당을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들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여론과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당원들의 열망이 한데 모였을 때 여당의 국회의원들도 비록 소수이지만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국감을 앞두고 있다고 하지만 전체 당원과 보수 지지층을 아우를 수 있는 당 대표를 제외시킨 것은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다. 한 대표는 지난 7월 전당대회 때 당원투표(80%)와 국민여론조사(20%)를 합해 62.8%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됐다. 아무리 미워도 당원과 지지층을 아우를 수 있는 당의 중심임에는 틀림없다.
결국 윤 대통령은 자신의 우군을 국민의힘이라는 ‘대중 정당’이 아닌 국회법 상의 ‘교섭단체’로 축소시키는 우를 범한 것이다. 요즘 윤 대통령 주변에는 자신의 친정인 검찰, 임명권을 행사한 행정부 장차관, 소수의 친윤(친윤석열)계 정치인들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윤 대통령이 자신과 임기 이후까지 함께 가야할 동반자는 국회의원들의 집단인 ‘교섭단체’가 아니라 당원과 지지층을 모두 껴안고 있는 ‘정당’이라는 점을 상기했으면 한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