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승현의 남북 MZ] 북한 MZ와 한류 너머의 꿈
고신대 교양학부 교수(통일학·경영학)
탈북민 과반 ‘한국 동경’ 젊은 세대
장마당 유통 K콘텐츠로 인식 변화
한국 원하는 북한 주민에 화답해야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196명 중 MZ세대가 절반이 넘는 99명이었다. 정부는 한류 등의 영향으로 인한 북한 내 MZ세대의 인식 변화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필자는 지난 몇 년간 입국한 북한군 출신 탈북민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러시아와 중동 등 해외에 현역으로 파견되었다가 경험한 자유세계와 한국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정보가 한국행을 부추겼다고 했다. 입대 전에는 USB, 외장하드, 손전화(핸드폰) SD카드나 스마트칩으로 한국의 영상을 접했다며 북한에서 본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십수 편의 제목을 줄줄이 말하는데 나도 알지 못하는 드라마도 꽤 있었다.
전방에서 군인으로 근무하다 한국에 온 경험이 있는 필자가 그들의 말에서 놀랐던 것은 북한 MZ세대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예상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배급제 붕괴 후 확산한 장마당을 친숙한 생활 공간으로 삼고 성장했던 필자가 외부 정보를 접했던 경로는 ‘곽 테이프’(VTR), CD, DVD 정도였는데 장마당에서 진화한 시장 세대는 기술 발전에 힘입어 유통 매체의 다양화와 비약적으로 증가한 한류 콘텐츠 유통량의 기반에서 성장한 것이다.
해외에 파견되어서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서 한국의 정보를 접하느라 영화나 드라마는 북한에 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고 할 정도이니 북한 내 MZ세대의 인식 변화와 정보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북한에 한국 콘텐츠가 퍼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배급제가 붕괴하고 장마당이 급증하면서다. 처음에는 한류보다는 외국의 콘텐츠가 많았는데 북중, 북러 접경지대가 고리가 돼 한국 것보다 검열과 처벌이 덜한 외국 문물이 유통되었고, 한국의 콘텐츠는 출처가 모호한 상태로 유통됐다.
필자가 비무장 부대 훈련소에 입소하여 열렸던 오락회 시간에서 한 훈련병이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다가 보위장교에게 추궁당한 일이 있었다. 당황한 훈련병이 적공국(적군와해공작국)에서 개사한 노래라고 얼버무렸는데 다음 날 그는 보병부대로 쫓겨갔다. 당시만 해도 훈련병 대부분이 그 노래가 한국 노래라기보다 북한에서 한국군을 대상으로 만든 심리전 노래로 알고 있었다.
훈련소를 마치고 비무장 부대에 들어온 후 동기생들은 남쪽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울렸던 ‘이등병의 편지’를 듣고 철렁했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북한에 한류가 공공연히 유통되면서 ‘이등병의 편지’는 ‘떠나는 날의 맹세’라는 제목으로 북한 청년들이 군에 입대할 때 흔히 부르는 노래로 자리했다.
사회보다도 더 철저하게 통제되는 북한군에서조차 장교와 군인 등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한류를 접하다가 단속된 사례는 북한 당국의 발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주민과 청년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북한의 기성세대가 한류를 통해서 한국의 발전상과 자본주의 실체를 접한다면 장마당 세대는 동경을 넘어서 한국과 같은 삶을 꿈꾼다는 데 있다. 서울말과 패션이 유행되고 한국의 문화를 일상에서 구현하며 최근에는 한국행을 원하는 장마당 세대가 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결국, 체제를 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는 MZ세대를 정조준하여 북한은 서슬 퍼런 칼날을 빼고 나섰다. 이른바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청년교양보장법(2021년), 평양문화어보호법(2023) 등으로 불리는 ‘혐한 3법’ 제정인데 사형을 포함한 가장 가혹한 처벌로 북한 주민들을 옥죄고 나선 것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 대량 아사 사태를 고통으로 겪으며 장마당을 처음 만들어간 지금의 4050세대나 “날 키운 건 노동당이 아닌 장마당”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며 시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2030세대는 이제는 모두 체제의 지속성과 생존에 믿기 어려운 존재가 되고 있다.
북한 스스로 이미 인정한 것처럼 중동에서 ‘아랍의 봄’을 통한 정권 교체가 일어난 것은 청년 세대의 성장 환경이 이전 세대들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통제를 강화하면 할수록 K콘텐츠를 열망하는 북한 주민들의 욕구 너머에는 한국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북한의 동족 지우기와 반민족, 반통일 선언은 이와 무관치 않다.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민족도 통일도 무관심해진 한국에서 언제인가 분출될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에 과연 누가 어떻게 화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