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글로컬 시대의 부산 지역어 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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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부산 지역어는 곧 부산의 정체성
디지털 자료화로 활용도 높여야
외국인 정주 여건 향상에도 중요
영어 환경만 강조는 실현 어려워

며칠 있으면 한글날이다. 어버이날에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고마운 마음을 부모님께 전하는 것처럼 한글날이 다가오면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최근 한국 영화와 드라마, 음악 등 한국 문화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많이 증가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말을 소홀히 대하고 있으니 깊이 반성할 일이다. 특히 2022년 ‘영어 상용도시’ 논란에 이어 올해에는 법정동 명칭에 외국어를 포함한 ‘에코델타동’ 사태까지 벌어져 우리말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부산시가 오히려 우리말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항간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시는 국어 사용 조례에서 정한 우리말 및 지역어의 보전과 육성을 위한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시는 특히 지역어 보전과 육성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산의 지역어, 즉 부산말은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다양한 부산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부산만의 정서가 한데 모인 문화의 총체, 곧 부산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에서도 지역어 보전과 육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우선 지역어 실태 조사 사업의 결과를 바탕으로 부산말 사전 편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약 2500단어 정도의 소규모 사전으로 편찬된다고 한다. 제주도의 경우 10억 원 이상을 투입하여 〈제주어대사전〉을 만들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사전의 규모도 문제이지만 지역어 보전 사업의 방향성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달리 설정할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는 디지털 사회이기 때문에 ‘종이’ 사전에서 벗어나 지역어 자료를 ‘디지털’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디지털의 장점인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종이 사전에 담지 못하는 음성과 영상, 다양한 이미지 자료도 함께 제공할 수 있다. 즉, 종이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은 사전에서 아카이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역어 아카이브는 매년 부산의 문화를 대표하는 주제를 정해 관련 지역어 및 문화를 취재·조사하여 구축할 수 있다. 가령 ‘기장의 미역업’, ‘부산의 해녀’와 같이 주제를 정한 후 해당 지역 사람들과 면담을 통하여 주제 관련 지역어를 수집·정리한다. 그리고 동시에 사라져 가는 문화를 영상과 사진 자료로 기록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제에 따라 통합된 일련의 지역어 자료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부산학이자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한편 부산시는 외국인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7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영어하기 편한 도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허브도시로 나가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부산에 정주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는데, 의사소통이 가장 걸림돌이 되니 시민들의 영어 실력을 높여 외국인들의 생활 여건을 편리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과연 이러한 목표는 실현 가능한 것일까. 외국인이 부산에 자리를 잡고 산다면 부산 시민이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어, 부산 지역어를 배워야 한다. 정주한 곳에서 그 지역어로 소통할 때 비로소 서로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어 교육을 강화해 외국인의 조기 정주를 도운 후쿠오카를 글로벌 허브도시의 본보기로 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는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 등 특성에 따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지금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 특히 학습자의 학습 목적과 배경에 따른 수준별 맞춤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외국인을 위한 부산 지역어 교재를 만들어 상황에 맞게 활용한다면 외국인의 부산 정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비즈니스, 관광 등 단기간 부산을 찾는 외국인을 위해 인공지능 기반 부산 지역어 통·번역 앱을 만들어 제공할 수도 있다. 현재 많은 통·번역 앱이 있지만 부산 지역어를 인식하는 데 심각한 오류가 보인다. 따라서 부산 지역어를 대규모로 수집해 인공지능 학습이 가능하게 가공한 후 이를 기반으로 부산 지역어 특화 인공지능 통·번역 앱을 만든다면 정확도와 실제 활용도 향상이라는 두 효과를 함께 누릴 수 있다.

과거 우리는 세계화만을 강조하느라 우리말과 지역어를 소홀히 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의 지역화, 지역의 세계화가 함께 강조되는 글로컬(glocal) 시대다. 우리말과 지역어를 잘 보전하고 육성하는 것이 곧 글로벌 허브도시로 가기 위한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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