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 가을이다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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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열대야, 폭우로 한바탕 난리
잘 이겨낸 모두에게 안부와 위로 전해
가을은 세월의 흐름 절절히 느끼게 해
주변 분들에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어

드디어 가을이다.

지칠 줄 모르던 뜨거운 햇살 속 폭염과 열대야가 결국 물러났다. 낮의 햇살은 아직도 따갑지만, 아침저녁 부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지난여름은 정말 잔인했다. 밤낮 식지 않는 더위는 인간의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듯했다. 삼복이 지나도, 추석이 지나도 폭염은 계속됐다. 기록적인 폭우로 전국이 물난리를 겪고 나서야 겨우 여름이 물러났다. 이 폭우를 기상청은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만한 비’라고 했다.

올여름 충격적인 더위를 놓고 ‘이제 한국도 동남아 날씨가 됐다’ ‘계절의 개념을 다시 정리하자’는 말이 나온다. 이 가운데 ‘올해 여름이 앞으로 맞을 최고 시원한 여름일 수도 있다’는 말이 가장 충격적이다. 지구온난화로 점차 여름이 더워질 것이라는 경고다.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자녀와 그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지독한 무더위를 모두 견뎌냈다. 지구와 우주의 움직임에 따른 온도의 변화를 속절없이 겪어야 하는 나약한 인간. 하지만 이를 이겨낸 모든 분에게 안부를 묻고 위로를 전하고 싶다. 주변 사람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혹독한 여름을 간신히 견뎌낸 몸과 마음에 가을이 스며든다. 높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더위와 싸우느라 지친 우리에게 주변 꽃을 돌아보고 솜털 구름이 멋진 하늘을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주변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다들 더위뿐만 아니라 힘든 세상살이에 녹초가 된 모습이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은 끝이 없다. 자영업자 4명 중 3명은 수익이 월 100만 원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특검과 거부권으로 허송세월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부산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청년들은 일과 돈을 찾아서 수도권으로 떠나고,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지역 재개발 사업은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해 지지부진하다. 제대로 된 대기업 하나 없는 부산은 ‘돌파구가 과연 있을까’는 푸념과 체념의 가운데쯤에 놓여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전과 열정의 마음보다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방관과 허무의 마음을 갖게 된다. 삶의 보람과 기쁨보다는 분노와 허전함이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가을이다. 단풍의 시간이고 낙엽의 시간이다. 바람은 말없이 지나간다. 익어가는 것은 다시 비우고 물러가는 것임을 아는 듯. 가을은 세월의 흐름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시간이야말로 인생을 사는 시간이다. 내가 존재하는 순간이다.

현실 속에서 허덕이지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지독한 계절과 아픈 현실 속에서 나를 지키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이 같은 현실을 함께 버텨온 사람에 대한 상호 의지와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올가을에는 ‘감사의 마음’을 갖기로 했다. 그동안 나의 잘못으로 지키지 못한 약속은 없었는가? 무심코 뱉은 말로 스쳐 간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았는가? 지금껏 세상을 살아오면서 분에 넘친 은혜를 입었다. 염치없이 신세를 진 분들이 수없이 많다. 이 가을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폭염의 잔인함이 어느새 끝나고 사람과 자연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 이 뒤숭숭한 세상에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가.

이렇게 청명한 가을하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출근길 햇살과 맑은 하늘을 바라보니 바람까지 싱그러울 수가 없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율,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쳐다보게 만드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다. 은행잎, 소나기, 눈보라, 나무, 하늘 모두 아름답지만 ‘저 멀리 가고’ ‘오래 남지 않으며’ ‘홀로 설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힘들게 찾아왔지만 오래 가지 않을 가을날. 새로운 만남에 설레고 지금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자. 다시 한번 나를 알거나 앞으로 알아갈 모든 이들과 모든 것들에 뒤늦게 또는 미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강성할 독자여론부장 shgang@busan.com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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