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부산은 왜 '빌바오'가 될 수 없을까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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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진 경제부 차장

전쟁에 관심이 많은 아이 덕분에 ‘전쟁의 아픔과 기억’이라는 테마로 최근 베를린과 바르샤바, 크라쿠프 등을 다녀왔다. 도시의 역사성과 건축물의 상징성은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특히 뇌리에 맴돈 것은 ‘빌바오 효과’였다. 랜드마크 건축물이 해당 지역의 경쟁력을 견인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1980년대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세우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모한 스페인 북부도시 빌바오에서 유래됐다. 빌바오 효과를 두고 말들이 많지만, 뛰어난 디자인의 건축물이 지역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분명 크다. 2001년 완공된 독일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등과 함께 통일 이후 베를린의 파급력을 높이는 선두 주자 역할을 하고 있다. 빌바오 효과는 아니더라도 관광객을 불러모으며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건축물들은 폴란드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폴란드 크라쿠프의 바벨성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와 현대 건축물의 조화는 관광객 재방문의 일등 공신이었다.

부산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부산의 랜드마크 건축물이 뭐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후보들은 꽤 있지만 대부분 공사 중이거나 논의 단계 또는 논란의 중심에 머문 탓이다.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의 핵심으로 꼽히는 부산항 북항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십수년째 기대만 모으고 있다. 주요 시설 중 하나인 오페라하우스는 설계 공법 적정성 논란 등으로 1년여 간 건설이 멈췄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공사가 재개됐다. 공사 지연과 사업비 증액에 대한 책임 규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1단계 사업에서 가장 규모가 큰 랜드마크 부지(11만 3286㎡)는 나대지로 남아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지역 상공계에선 2029년 개항을 목표로 하는 가덕신공항과 연계해 쇼핑과 관광, 마이스를 아우른 북항 복합리조트 유치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카지노=사행 산업’이라는 인식이 점차 옅어지면서 북항 복합리조트 재추진 움직임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산업 재편 차원에서 설득력 있는 해법이지만 반대 여론을 의식한 소극적인 행정으로 가야 할 길은 멀다.

남구 이기대 일대 프랑스 미술관 퐁피두 센터 분관 유치도 화두다. 막대한 유치·운영 비용부담 우려와 문화클러스터 구축 필요성이 팽팽하게 맞선다. 이번엔 시민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밀어붙이기 행정으로 여기저기서 논란이다.

단순 건축물에 머무는 랜드마크는 도시의 생명력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도시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는 중심에 서야 한다. 빌바오시가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로 도시를 탈바꿈하는 데 성공한 것은 도시 산업 재편의 큰 그림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자금 조달 및 운영 등에 대한 촘촘한 세부 계획과 수십년에 걸친 지역 연계 개발, 민간 협력도 뒷받침됐다.

거대 복합리조트를 중심으로 금융까지 거머쥐면서 빌바오 효과의 대표 주자로 등극한 싱가포르의 사례는 결코 남 얘기가 아니다. 부산의 산업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복합리조트와 같은 건축물이 랜드마크인 부산항 북항에 들어서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부산만의 모습을 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은 물론 주요 경제 주체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랜드마크 구축은 부산의 전환점이 되기 충분하다. ‘부산 효과’라는 용어가 탄생할지 누가 알겠는가.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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