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위기지학
정치부 기자
학문은 크게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나뉜다. 위인지학은 남을 위한 공부, 이를테면 출세를 목표로하는 것이고 위기지학은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다. 모름지기 군자라면 위기지학으로 내면의 수신을 으뜸으로 해야 한다.
부산에서 학문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국회의원 A 씨가 있다. 실제로 그의 사무실 직원들 중 일부는 석사,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대학원을 적극 장려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배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공부하는 만큼 볼 수 있는 세상의 넓이나 깊이가 확대된다는 지론 때문이다.
이러한 A 씨는 최근 공식 석상에서 부산의 상황에 대해 냉정한 진단을 쏟아냈다. 인구가 350만 명 선이 무너졌으며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 지역 청년 인구가 유출되고 있다, 부산이 전국 광역시 중 최초로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했다 등 구구절절 올바른 소리를 쏟아냈다. 또한 현장에 있는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고견을 하나하나 낱낱이 메모해 정책에 반영하겠다”며 남다른 학구열을 내비치기도 했다.
부산과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통렬한 그의 비판을 들은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그를 바라보는 젊은 청년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아마도 남들보다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그의 냉철한 면모에 놀랐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회를 분석하고 송곳처럼 지적하는 데 능숙한 그에게도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거나 잘못을 인정하는 등 허물에 대한 반성의 자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부산에서 십수년간 정치인으로 살아오며 이제는 원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연히 선배 정치인의 위치에 있는 그이다. 그가 말한 부산 인구 350만 명 이하 시대가 도래할 때에도,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야 할 때에도 그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이었다.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는 것은 집안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출발점이다. 여기서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는 방법이 바로 위기지학이다. 위기지학이 없는 위인지학은 ‘광인’에게 큰 칼을 쥐여준 꼴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할 수 있지만 그 속은 오욕(五慾)으로 가득해 비공개 자리에서 막말이나 욕설을 서슴지 않으며 학문을 수단 삼아 쌓아 올린 자신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그가 학문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했든 앞으로는 내실을 키우는 수양을 통해 부산에 진정 쓰임이 되는 존재로 거듭나기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