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로또 당첨금 ‘얼마면 되니’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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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집값 4배 오르는 동안 당첨금 제자리
복권위원회 당첨금 인상 설문조사 진행 중
인생 역전에 걸맞은 로또 구조개편 목소리


로또의 상징성은 ‘인생 역전’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비루한 일상과 불안한 미래를 한 방에 반전시킬 수 있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 로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로또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또에 당첨됐는데 집 한 채도 살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다. 최근 1등 당첨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당첨금이 3억 원 남짓에 불과하자 이게 무슨 ‘인생 대박’이냐는 볼멘소리까지 들린다. 결국 정부가 로또 당첨금 규모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에 나선다고 한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생각함 홈페이지를 통해 ‘로또복권 1등 당첨금 규모 변경,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제목의 설문조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정부가 로또 당첨금 규모 변경에 대한 국민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부산일보DD 정부가 로또 당첨금 규모 변경에 대한 국민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부산일보DD

∎국내 로또 발생 초기 사행성 논란

로또(lotto)는 이탈리아어로 행운을 의미하는데 ‘제비뽑기’를 뜻하는 라틴어 롯(lot)에서 유래했다. 복권을 뜻하는 영어 로터리(lottery)도 이 말에서 나왔다. 1530년 이탈리아 제노바공화국에서는 90명의 정치가 중 추첨을 통해 5명의 대표의원을 선출했는데, 이를 본떠 피렌체 지방에서 90개의 숫자 중 5개를 추첨하는 ‘5/90 로또 게임’이 생겨났다. 당시 도시국가였던 피렌체는 공공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번호추첨식 복권인 ‘피렌체 로또’를 발생했는데 이게 근대적 의미의 복권 시초다.

우리나라에서 로또가 처음 발행된 것은 2002년 12월 2일의 일이다. 당시 로또 가격은 게임당 2000원이었다. 1등 평균 당첨금이 35억 원을 웃돌았고 무제한 이월 규정으로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수백억까지 손에 쥘 수 있었다. 2003년 4월 12일, 당첨금 이월로 1등 당첨자 한 명이 사상 최대인 407억 2000만 원을 차지하면서 그야말로 ‘로또 광풍’이 불었다. 정부는 사행성 논란이 거세지자 로또 당첨금 이월 횟수를 제한하고 2004년 8월 한 게임당 가격을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렸다.



2023년 로또 온라인 판매 허용에 따른 신규 판매점 모집 광고. 부산일보DB 2023년 로또 온라인 판매 허용에 따른 신규 판매점 모집 광고. 부산일보DB

∎인생 역전 퇴색된 우리나라 로또

로또는 사실 정해진 확률 게임이다. 우리나라 ‘로또 6/45’는 1부터 45까지의 숫자 중 6개를 고르는 방식이다. 1등 당첨 확률은 814만 5060분의 1이다. 1만 6000년 동안 빠지지 않고 매주 10장씩 구입해야 1등에 당첨될 수 있는 확률이다.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데 내가 당첨될 확률이 거의 없지 거의 매회 당첨자는 나온다. 현재 로또는 회당 약 1억 1000만 건이 판매돼 1등 당첨자는 평균 12명, 1인당 1등 당첨 금액은 평균 21억 원 수준이다. 당첨자가 무더기로 나오면 당첨금은 크게 줄어든다. 7월 13일 제1228회에는 1등 당첨자가 무려 63명이 나왔다. 1등 당첨금은 4억 1993만 원(실수령액 3억 1435만 원)에 불과했다. 인생을 바꾸기에는 턱없는 수준이다. 로또 발행 20년 동안 3억 원이던 서울의 평균 집값은 13억 원으로 4배가량 뛰었다. 화폐 가치는 떨어지고 자산 가격은 크게 올랐는데 로또 당첨금은 제자리걸음이니 대박의 꿈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 로또인 파워볼의 경우 조 단위 당첨자 탄생으로 화제가 되곤 한다. 파워볼은 1부터 69가 적힌 흰색 공에서 5개, 1부터 26이 적힌 붉은색 공에서 1개를 선택하는데 이를 모두 맞히면 1등이다. 파워볼 잭팟 확률은 2억 9220만 1338분의 1이다. 우리 로또보다 36배나 어렵고 이월 제한이 없다 보니 당첨자 없이 상금이 이월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조 단위 당첨금도 가능하다. 결국 확률 게임이다.



부산 동구 범일동 ‘천하명당 나눔로또 복권방(부일카서비스)’ 앞에 로또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다. 부산일보DB 부산 동구 범일동 ‘천하명당 나눔로또 복권방(부일카서비스)’ 앞에 로또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다. 부산일보DB

∎ 명당론·번호 예측 과학적 근거 없다

로또 무더기 당첨이 나올 때마다 조작설이나 음모론이 확산하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다. 로또를 구입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굴절된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소위 ‘로또 명당’도 마찬가지다. 로또 추첨일이 가까워질수록 전국의 로또 명당에는 긴 줄이 이어진다. 그러나 로또 명당도 구매자 비율에 따른 상대적 확률일 뿐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전국의 로또 명당을 표본 분석한 결과 전체 매출액과 당첨자 비율에 있어 일반적 로또 판매점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로또 명당 주인이 로또 맞았다는 말이 맞는 셈이다.

독특한 알고리즘으로 당첨번호를 맞출 수 있다며 로또 마니아들을 유혹하는 예측 업체도 마찬가지다. 2022년 6월 있었던 1019회차 로또 1등 당첨자 가운데 42명이 수동으로 번호를 맞췄는데 당첨번호 예측 업체에서 1등 당첨번호의 6개 숫자를 분석해 내놓은 번호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출연 빈도를 이용한 로또 번호 예측은 이미 로또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상식이 된 이야기지만 이 또한 검증되지 않았다. 출현 횟수가 상위에 속하는 숫자와 그렇지 않은 숫자의 출현 빈도 차이가 유의미할 정도로 크지 않다. 로또 당첨번호는 애초에 정보가 없는 수열에 불과할 뿐이다.



미국 미네소타주 로즈빌에서 파워볼 복권의 잭팟을 터뜨린 폴 화이트(맨 오른쪽) 씨가 파트너 및 회사 동료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미네소타주 로즈빌에서 파워볼 복권의 잭팟을 터뜨린 폴 화이트(맨 오른쪽) 씨가 파트너 및 회사 동료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첨 확률 낮추거나 게임비를 올리거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복권 당첨금에 대한 여론 수렴에 들어간 만큼 어떤 방향으로 개편안이 나올지 주목된다. 로또 당첨금 개편은 당첨 확률을 낮추거나 게임비를 올리는 방안이 대안으로 이야기된다. 서울대 통계연구소는 1~45에서 6개의 번호를 고르는 것에서 1~70에서 6개의 번호를 고르는 것으로 바꾸면 1등 당첨 확률이 1억 3111만 5985분의 1로 약 16배 낮아져 당첨금이 높아지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 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게임당 가격을 1000원에서 2000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세금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 로또 복권에 당첨되면 3억 원까지 22%, 3억 원을 초과하면 33%의 세금을 부과하는데 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24% 세율로 원천 징수하고 추가로 주정부가 별도 세금을 가져간다. 반면 영국을 비롯해 프랑스 캐나다 호주 일본 등 국가에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꿈에는 세금이 없다’는 말인데 로또 마니아들은 퇴색한 인생 역전의 의미를 보완할 현실적 대안으로 주장한다.

복권위는 다음 달 25일까지 설문조사 결과와 전문가 의견을 취합해 당첨구조를 손질한다는 계획이다. 기재부 내에서는 현 당첨금 수준이 적정하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져 개편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사행성 조장이나 근로 의욕 감퇴 등 부정적 여론도 부담이다. 하지만 로또의 의미가 갈수록 퇴색해 개편 목소리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로또는 사는 순간 절반을 손해 보는 게임이다. 이런 수학적 명징성에도 불구하고 로또의 효용 가치는 서민의 빈 주머니를 따뜻하게 해주는 소박한 환상에 있는지도 모른다. 로또의 효용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구조개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강윤경 논설위원 강윤경 논설위원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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