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쇠퇴의 길로 접어든 ‘전통 추석’
“추석에 차례·제사 안 지낸다” 60%에 달해
고향·친지 방문 대신 개인 여행·휴식 더 선호
날씨까지 폭염, 갈수록 전통적인 의미 퇴색
우려 시각 있지만 편의성 중시 분위기 뚜렷
추석 명절이 낀 제법 긴 연휴가 지났다. 추석이 되면 으레 ‘민족 최대의 명절’, ‘오곡백과가 풍성한 한가위’ 같은 상투어가 등장하지만 요즘은 딱히 가슴에 와닿지 않는 느낌이다. 추석이 되어도 고향길 대신 개인 여행을 떠나거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느는 추세다. 추석은 이제 ‘전통 명절’이라기 보다 사실상 ‘여행 또는 휴가철’로 더 효용 가치를 지니는 듯 여겨진다.
■ 갈수록 사라지는 명절 분위기
근래 수년간 전통 명절 추석의 퇴보는 두드러지고 있지만 올해의 경우 이런 경향은 더 짙어졌다. 특히 추석이 있는 9월 중순은 절기상 가을인데도 오히려 8월보다 더한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계절적으로도 과연 앞으로 전통적인 개념의 추석이 지속될 수 있을지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갖게 됐다. 더구나 폭염이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이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인지 추석 아침에 차례를 올리는 경우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경제적 부담이 만만찮은 데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추석에 평소 잘 먹지도 않은 음식으로 차례를 올리는 것이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의 거부감은 훨씬 더하다. 그러니 아예 추석 당일 차례를 올리지 않는 게 큰 흐름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봐도 작년까지는 차례를 올렸지만 올해부턴 이를 생략하는 집이 무척 많아졌다. 한국리서치가 추석을 앞두고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9%가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했다. 다른 기관의 조사 결과도 거의 60% 정도로 이와 비슷했다.
대신 벌초나 성묘가 차례나 제사를 대체하는 분위기다. 대행업체에 맡기거나 아니면 친지나 가족들과 현장에서 만나 함께 벌초나 성묘를 하는 것으로 추석 행사를 갈음한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추석 차례 장면은 아마 쉽게 보기 어려운 모습이 될 것 같다.
■ 여행·휴가 등 개인 활동 더 선호
추석 때 흔히 언급되는 ‘민족 대이동’이라는 말도 그 의미가 변했다. 집을 나서는 사람들의 행선지는 이제 고향이 아닐 경우가 더 많다. 장년 이후의 세대라고 해도 지금의 고향은 더는 예전 어린 시절의 고향 모습이 아니다. 또 고향에 가더라도 뵐 수 있는 친지나 동네 어른들도 많이 없다. 젊은 층은 대체로 도시에서 태어나 고향이라는 의식 자체가 희미하다. 이런 고향을 굳이 도로가 북적이는 시기에 찾을 간절한 이유는 없는 것이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다. SK텔레콤이 AI 기반 설문 서비스인 ‘돈 버는 설문’을 통해 변화된 추석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를 지난 17일 공개했는데, 1021명의 응답자 중 추석 연휴에 고향이나 가족·친지 방문 계획이 있다고 답한 경우는 42.7%에 그쳤다. 나머지는 대부분 휴식이나 여행 등 개인 여가 활용을 들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추석 문화 자체가 편의성 위주로 급변하는 모습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대세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차례나 고향·친지 방문 등 추석 명절을 상징하던 전통적인 관습이나 의례는 이제 추석의 주류가 아니다. 그런데 젊은 층은 물론 예전의 전통적인 추석 문화에 익숙한 장년층 이상 세대들도 이런 추세를 어색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달라진 사회경제적인 여건과 함께 변화하는 세태를 감안하면 전통적인 추석 풍습 등 문화를 이제 더는 고수할 수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일부에선 여전히 이런 변화를 걱정하는 시각이 있기는 하다. 전통적인 추석의 본질은 외면하고 개인적인 편의성만 추구한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추석과 관련한 전통 풍습은 현재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고, 점점 희미해지는 추석 명절의 분위기를 되살리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아무리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문화라고 해도 시대와 세태의 변화로 인한 영고성쇠는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