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구덕운동장 재개발에 대한 단상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글로벌 허브도시 지향 부산
지역 재생·활성화 초점 맞춰
도시 미래 신중히 설계해야
지난 7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의 22층 빌딩 허츠 타워가 폭파됐다. 수리비 2200억 원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1983년에 지어진 허츠 타워는 40년간 이 지역 대표적인 마천루로 꼽혔으나 2020년 허리케인의 여파로 심각하게 파손됐고 건물 복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 4년간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매각은 되지 않고 소유주인 허츠 그룹이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철거를 결정했다. 건물 폭파 비용만도 93억 원에 달한다는 뉴스를 접하니 남의 나라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이상기후는 농산물 가격을 흔들었고, 1년 중 절반이 여름이 될 수도 있다는 기후위기 앞에서 부산이라고 비켜갈 수 있을까.
부산에는 허츠 타워보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하다. 태풍만 와도 비상인데, 해일이나 허리케인이 몰려온다는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기후위기와 인구절벽 앞에서 도시 부산의 미래는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글로벌 허브도시를 지향하는 지금 부산은 가덕신공항 건설, 북항 재개발, 양질의 일자리 부족, 수도권과 교육·문화의 격차로 인한 청년 유출, 거기다 저출생 및 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과 맞물려 늘어나는 빈집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이런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듯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중·단기 혹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기적으로 해결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부산은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며 급속하게 팽창한 도시다. 대한민국 재건 당시 교육, 문화, 경제의 주요 동력이었고, 한편으로는 전국의 피란민을 껴안으며 성장했다. 도시 개발 이전에 정착한 피란민들은 마을을 만들었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주택개량사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1980년 이후부터 그야말로 우후죽순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재개발·재건축과 함께 이룬 아파트 숲은 골목을 없애고 이웃을 단절시켰다. 이 시기 교육, 문화, 산업은 빠른 속도로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남은 아파트들은 재건축, 노후 주거지는 재개발 혹은 도시재생으로 결을 달리 했다. 재건축된 아파트는 용적률을 높여 점점 더 높아졌고, 타산이 맞지 않은 노후지역은 도시재생을 진행했음에도 사업이 끝남과 동시에 활력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빈집이 늘어나는 마을에 근원적 대책 없이 제한된 예산으로 진행된 도시재생은 정체가 모호해진 상태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어디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규정하듯, 집은 점점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혁신지구 공모에서 최종 탈락한 구덕운동장 복합 재개발사업만 해도 그렇다. 구덕운동장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들어섰다. 1940년 ‘노다이 사건’이라 불리는 항일학생운동도 여기서 벌어졌다. 해방 이후 ‘부산공설운동장’이라고 이름을 정했고, 1985년 사직야구장과 사직실내체육관이 문을 열면서 ‘구덕운동장’으로 명칭을 바꿨다. 구덕운동장은 사직야구장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부산 지역 스포츠의 메카였다. 부산의 미래유산 목록에도 들어있는, 말 그대로 부산 지역 운동장의 역사 그 자체다.
2023년 12월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 대상지가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혁신지구 후보지로 선정됐다. 공모에서 최종 확정됐다면 부산시는 국비 최대 250억 원과 시비 250억 원을 재원으로 활용하는 도시재생 혁신지구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을 테지만, 결국 무산됐다. 축구 전용구장과 문화·생활체육시설, 상업·업무시설 등을 건립한다는 계획이었으나, 800가구 규모의 고층 아파트 설립 계획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주민들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아무래도 주변 환경이 공공의 성격보다 사유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했다. 만약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 계획에 고층 아파트 대신 지식산업센터를 포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덕운동장이 소재한 부산 서구는 주요 대형병원이 모여 있어 의료관광 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동아대학교병원, 부산대학교병원, 고신대학교복음병원이 있고 메리놀병원도 10분 거리다. 구덕터널만 지나면 지척에 백병원이 있다. 지식산업센터에 특화된 의료 관련 산업을 유치하여 주변 병원들과 연결한다면 서구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더한 경제, 산업,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원도심 경제 활성화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
변화의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와 인구절벽을 맞은 지금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지역 재생과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변화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