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위대한 연인, 클라라의녹턴
음악평론가
작곡가들 사이엔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 베토벤과 ‘불멸의 연인’, 쇼팽과 조르주 상드, 말러와 알마, 드뷔시와 엠마 바르다크 등 저마다의 열정과 스캔들로 음악사를 흥미롭게 만들어 놓았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랑의 테마는 아마도 슈만, 클라라, 브람스를 둘러싼 이야기일 것이다.
클라라 슈만(1819~1896)은 1819년 9월 13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훗날 남편이 되는 로베르트 슈만보다는 아홉 살이 적다. 슈만(이하 로베르트 슈만)이 음악을 배우기 위해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에게 찾아갔을 때 슈만은 스무 살 청년이었고 비크의 딸 클라라는 꼬마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 후 클라라의 성장은 눈부셨다. 파가니니와 리스트마저도 클라라의 연주에 찬사를 보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애지중지 길러온 천재적인 딸을 가난한 음악가에게 보내기 싫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자식을 이길 수 있는 부모는 흔치 않은 법이다. 결국 슈만과 클라라는 아버지와 법정 소송까지 해서 1840년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후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잘 알려진 대로 슈만은 1854년 라인강에 뛰어들었다. 정신병원에 들어간 후 나오지 못한 채 2년 후에 세상을 떠났고, 의리인지, 존경인지, 사랑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혼자된 클라라의 곁을 항상 브람스가 지켰다. 클라라는 아이들을 보살피며 틈틈이 작곡과 연주회를 이어갔다. 슈만과의 결혼 생활은 총 16년이었다. 클라라는 그 기간에 계속되는 임신, 출산, 육아를 고스란히 감당했고 남편의 우울증까지 보살펴 가면서 슈만 작품의 편곡, 초연, 출판을 맡았다.
그녀는 189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가질 때까지 60여 년간 무려 1300여 회 음악회를 열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이나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처럼 재능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사라진 여성 연주자들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점은 무척 아쉽다. 그나마 오늘 소개하는 녹턴 작품6-2번 같은 곡이 남아 있어 그녀의 천재성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 곡은 1836년 출판된 ‘6개의 피아노 소품집’에 수록된 곡이다. 작곡 시점은 그보다 1, 2년 전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불과 15~16세 때 만든 작품인데, 그 서정적인 기품이 놀랍다. 이즈음에 클라라의 눈에 비친 슈만은 아저씨가 아니라 사랑스러운 오빠로 변했고, 슈만 역시 어린애가 아니라 여인으로 클라라를 바라보기 시작할 때였다. 그 들뜬 마음이 음악 속에 이렇게나 오롯이 스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