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콘크리트 묘지? ‘장묘 문화’ 어디로…
농촌 고령화에 벌초 어려움 등 원인
조상 기리는 소중한 전통 계승하고
후손들 거부감 없는 새 문화 고민을
10년 전쯤이었나. 전남 지역의 한 야산에 시멘트 묘지가 등장해 화제가 된 적 있다. 그런데 지금도 형태는 다르지만 콘크리트 묘지는 심심찮게 보인다. 고령화 사회가 깊어지고 벌초가 갈수록 힘들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장묘 문화 전환기의 상징적 모습, 어떤 의미로 읽어야 할까.
■ 관리 힘들어 시멘트로…
시멘트 묘지는 10여 년 전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장묘 양식이다. 2013년 전남 지역의 어느 문중에서 선산 묘지 일대를 시멘트로 두른 모습이 여러 매체에 뉴스로 보도된 바 있다. 멧돼지 등 산짐승으로부터 훼손을 막는다는 취지였다. 당시 봉분에 잔디를 심고 주변은 시멘트나 인조 잔디로 포장한 묘지가 적지 않았다. 또 다른 농촌 지역에서는 묘 주변 바닥을 시멘트로 덮은 뒤 초록색 페인트를 칠하기도 했다. 봉분까지 아예 인조 잔디를 올리거나 페인트로 도색한 경우도 있었다.
시멘트 묘지의 등장은 묘지 관리의 어려움을 웅변하는 현상이다. 묘지 벌초가 고된 작업인 데다 멧돼지 등 산짐승에 의한 무덤 훼손도 심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매장보다는 화장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깔려 있다.
최근에는 또 다른 형태의 콘크리트 묘가 등장해 이목이 쏠렸다. 유골함을 땅에 묻은 평장묘인데, 묘 주변 바닥을 콘크리트로 타설하고 위에 쇄석(잘게 부순 돌)을 깔았다. 봉분도 없고 주변엔 잡초도 자라지 않아 묘역이 깔끔한 게 특징이다. 10여 년 전 시작된 시멘트 묘지가 곱지 않은 시선을 받자 새롭게 나온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석재 업계에 따르면, 이런 형태는 어느 정도 대중화돼 있는 상태라고 한다.
■ “예의 아니다” “현실 수용을”
시멘트 묘지. 여기에 대해서는 “조상에 대한 예가 아니다” “관리 고충 생각하면 이해된다” 등 여러 견해들이 교차한다.
유림계는 당연히 콘크리트 타설을 반대한다. 흙은 뭇 생명을 품는 대지의 상징이다. 그래서 땅의 기운은 예로부터 신앙처럼 여겨졌다. 사람이 죽은 뒤에 흙에 묻히는 것도 본래의 자연으로 다시 돌아감을 의미한다. 묘지는 떠난 자와 남은 자를 잇는 역할을 한다. 조상의 묘를 섬기고 찾는 일의 소중한 뜻이 여기에 있다. 흙이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 삭막한 시멘트 묘가 망혼에 대한 예의일 수 없다는 한탄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풍수지리 쪽에서도 시멘트가 지기(地氣)를 망쳐 후손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본다.
하지만 묘지 관리가 쉬운 방식으로 세태가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농촌의 노령화, 벌초를 비롯한 선산 관리, 산짐승 출몰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다. 후손들은 대부분 외지에 있고 묘지를 지켜온 사람은 고령이 되어 간다. 관리가 지속되기 힘든 건 당연하다. 1년에 여러 차례 벌초를 해야 하는데 일꾼 구하기도 어렵다. 콘크리트 묘는 집안끼리 의논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인 경우가 많다.
이런 상충된 입장과는 별개로 콘크리트 묘가 환경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시멘트나 페인트·석재·인조 잔디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환경이나 미관 문제와 관련된 또 다른 갈등이 빚어질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 바람직한 장묘 문화는
묘지 관리 문제는 한국의 전통적 봉분 매장 중심의 장묘 문화에서 비롯한다. 변화하는 장묘 문화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예가 콘크리트 묘다. 전통적 가치는 지켜내고 싶은데 벌초는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 그 가운데 나타난 전환기의 장묘 방식이란 뜻이다.
지금은 화장 문화가 대세다. 전국 화장률은 지난해 기준으로 91.9%에 이른다. 장례 유형도 마찬가지다. 2023년 통계를 보면, 화장 후 봉안이 35.2%, 화장 후 자연장(수목·화초·잔디에 묻는 장례)이 33.2%, 화장 후 산분장(산·강·바다에 뿌리는 장례)이 22.6%, 매장이 8.5% 순이다. 매장 사례가 가장 적음을 알 수 있다.
장례와 장묘 문화는 앞으로 더 거센 변화의 바람을 맞을 것이다. 한때 매장 중심의 장례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조상을 기리는 소중한 전통을 계승하되 후손들이 거부감 없이 흐름을 이어갈 방법은 없을까. 환경도 살리고 추모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이 변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